
출처 : SONOW
돈다발 띠지, 현금 출처 추적의 결정적 단서로 활용
돈다발에는 복잡한 스토리가 따라붙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금 뭉치를 '개인 금고'에 고이 모아둔 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사연'을 엿볼 수 있는 정보를 품고 있는 것이 바로 돈다발의 '띠지'다. 시중은행은 창구에서 현금을 인출해 줄 때 지폐 100장을 하나의 띠지로 묶는다. 통상 띠지에는 현금을 내준 텔러(은행원)의 막도장이 찍혀 있으며, 은행 지점이나 출금 날짜 등 정보가 담기는 경우도 있다.
수사기관은 '돈다발 관련 범죄' 수사 시 띠지를 먼저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압수수색에서 뭉칫돈을 발견했을 때 소유자가 출처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더라도, 은행 지점·출금일 등 '띠지 정보'를 추적하면 실타래가 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띠지는 2012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했다. 고승덕 당시 의원이 받은 돈봉투의 하나은행 띠지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계좌 인출 내역과 연결되며 수사의 돌파구가 됐다.
한국은행 관봉권, 정부 고위층 비리 연루 정황으로 주목받아
현금 다발을 묶은 띠지 중에서도 한국은행이나 조폐공사가 직접 묶은 띠지를 '관봉(官封)'이라고 부른다. 관봉권은 한국은행이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에 화폐를 보낼 때 주로 사용하며, 지폐 100장 묶음으로 띠지를 두르고 이를 다시 10개씩 묶어 비닐 포장 후 스티커를 붙인다. 거액의 신권 관봉권이 일반인에게 흘러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피의자의 주거지 등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경우 정부 고위층의 부정부패·비리 연루를 가리키는 정황이 되곤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서 장진수 전 주무관이 받은 5,000만원 돈다발은 한국은행 관봉권이었다. 지폐의 일련번호가 순서대로 정리된 이 돈다발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특활비 사건 수사를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났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국정원에서 청와대 민정2비서관을 거쳐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밝혀냈다.
띠지 정보가 피의자 변명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증거로
띠지는 현금 출처에 관한 사건 관계자의 변명을 탄핵하는 근거로도 활용된다. 2018년 송도근 전 경남 사천시장 금품 수수 사건에서는 증거은닉 혐의자가 "일본에서 환전한 돈"이라고 주장했으나, 띠지에 담긴 경남 진주시 은행 정보와 최근 발행된 지폐 정보가 이를 반박했다. 법원은 "진주시 은행에서 인출된 돈다발이 3개월 내에 우연히 일본 현지 환전상의 손에 들어갔다가 피고인에게 넘어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실형을 선고했다.
또한 피의자가 평소 거래하지 않는 은행의 띠지는 '유죄의 심증'을 형성하기도 한다. 서울 노원구 청원고 교장 비리 사건에서는 교장이 거래한 적 없는 은행의 띠지가 발견되어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됐다. 이처럼 돈다발 띠지는 수사 과정에서 결정적 증거로 작용하며, 불법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