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한국인 범죄 급증, 연간 1억 달러 ODA는 계속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불법 감금, 폭행, 온라인 사기 등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지만, 캄보디아 당국의 수사 공조가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피해자 가족은 '범죄 조직이 현지 공권력의 비호 아래 활동하고 있다'며 정부의 외교적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나라는 매년 1억 달러 안팎의 공적개발원조(ODA)를 캄보디아에 제공하고 있다. 2024년에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기본 약정을 기존 15억 달러에서 30억 달러로 두 배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협력 규모가 확대되는 가운데, 수혜국의 공공 책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자체·정치권, ODA 재검토 움직임 본격화
지자체와 정치권에서 ODA 집행에 대한 재검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추진 중이던 '차 없는 거리' 조성 사업에 대해 '추가 ODA 지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지 치안 불안과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추가 공적자금 투입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ODA 지원의 방향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은 '한국인 피살 사건에 대한 캄보디아 정부의 수사 협조가 미흡하다'며 '수사 비협조국에 대해서는 ODA를 조건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들은 ODA를 단순한 개발지원이 아닌 외교·안보 정책의 수단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ODA 체계의 구조적 한계, 법적 근거 부재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한국 ODA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현행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는 수혜국의 자국민 보호 의무와 관련된 조항이 없어, 정부가 법적으로 사업을 중단할 근거를 갖지 못한다. 이 때문에 외교적 판단을 통한 '보류'나 '조정' 수준의 대응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주요 선진 공여국들은 이미 자국민 안전을 ODA 정책에 명시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해외원조법(Foreign Assistance Act)」를 통해 '미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거나 테러 행위를 지원하는 국가에는 어떠한 형태의 원조도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1970년대부터 적용돼왔으며, 리비아·시리아·이란 등에서 미국인 납치·피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실제로 원조가 전면 중단된 사례가 있다.
선진국의 'ODA-안전 연계 원칙', 한국도 제도화 필요
일본은 2016년 방글라데시 다카 테러로 자국인 7명이 숨지면서 해외 원조사업의 안전관리 체계를 전면 점검했다. 이 사건은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 전문가들이 현지 ODA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중 희생된 비극으로,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자국민 보호 중심의 ODA 안전대책을 강화했다. 외무성과 JICA는 같은 해 '국제협력사업 안전대책회의'를 설치하고, 해외 사업지의 테러·납치 위험 평가 절차와 비상연락망 체계를 의무화했다. 이후 일본은 2021년 미얀마 군사쿠데타 발생 시 비인도적 분야의 신규 ODA를 중단했다. 프랑스와 호주 역시 자국민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원조를 일시 중단하거나 치안 중심 사업으로 재편하는 원칙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일본처럼 'ODA-안전 연계 원칙'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부에선 원조 중단보다는 신규 사업 승인 단계에서 치안·안전 평가 항목을 추가해 위험요소를 관리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