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미국의 오랜 대립, 그 기원

1953년부터 이란과 미국의 관계는 악화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불타올랐다. 냉전 당시 이란의 친소련 행보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영국과 연합하여 이란의 석유 국유화 추진을 주도했던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를 축출하는 데 적극 개입했다.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총리가 전복되는 사건은 이란 내 반미 정서를 고조시켰고, 이후 이슬람 혁명의 발단이 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란 공화국 건립과 미국의 대응

당시 이란에서는 친미 성향을 가진 페르시아 왕족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샤 군주 체제가 미국 의지 아래 강화되고 있었다. 미국은 무기를, 이란은 석유를 서로 공급하는 관계를 유지했지만, 국왕의 부패에 분노한 시민들의 봉기에 이어 1979년 2월 팔레비 왕조가 무너졌고 4월 이슬람공화국이 건립되었다. 같은 해 11월 발생한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는 양국의 갈등의 정점을 보였다.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 미대사관을 점거하며 미국 대사 및 부인 등 52명이 444일간 억류되는 사건은 1980년 양국이 외교 관계를 단절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핵 갈등과 대리전의 심화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이란의 미신고 핵 프로그램이 드러나면서 양국의 갈등은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그 후에도 JCPOA 합의로 한순간의 평화를 보았지만,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하며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미군 공습으로 사살된 것도 양국 간 긴장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란은 하마스, 이라크·시리아 내 친이란 무장조직을 지원하고, 미국은 중동에 군사력을 추가 배치하며 대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가자지구와 레바논, 시리아, 예멘 등의 친이란 무장세력들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지지했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습하며 12일간 분쟁을 계속했고, 미국은 이란 본토를 타격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사망과 불확실한 미래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28일 이란-미국 갈등은 역사적인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의 적대 관계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 것처럼 느껴지며,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출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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