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은행 대출 창구와 부동산중개업소 매물 안내문

출처 : SONOW

연쇄 대출 중단, 은행들의 '셔터 내리기'

대한민국 주요 은행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대출 창구 문을 닫고 있다. 8월 5일 하나은행이 9월 실행 예정인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신규 신청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주요 시중은행들의 '대출 셧다운'이 본격화되고 있다.

하나은행은 "자율적 가계대출 관리의 하나로 주택시장 안정화와 연중 안정적인 금융공급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 압박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지난 6월부터 대출모집법인별 신규 취급 한도를 부여해온 것도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KB국민은행은 8월 1일부터 직장인 대상 신용대출 상품 3종의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KB스타 신용대출' 하나로 통합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 차원에서 대출 문턱을 높인 것이다. 지난해 9월부터는 전국에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이미 제한하고 있는 상태다.

신한은행의 움직임은 더욱 적극적이다. 8월 6일부터 10월까지 전국에서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한시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6·27 가계대출 규제로 수도권에서만 제한되던 임대인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전국으로 확대한 것이다.

758조원 가계대출, 그러나 신규 승인은 '제로'

아이러니하게도 은행들의 대출 중단 조치는 가계대출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월 말 기준 758조8826억원으로 6월 말보다 4조478억원 늘어났다.

이는 6월 가계대출 증가폭인 6조7536억원의 59.9% 수준으로, 6·27 규제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주택 매매 후 시차를 두고 주택담보대출이 실행되는 특성상, 현재 늘어나는 대출은 대부분 과거 승인된 것들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일부 실수요자를 제외하면 은행권의 신규 대출 승인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증언이 나온다. NH농협은행은 9월 실행분까지 한도 소진으로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담대·전세대출 접수를 아예 받지 않고 있다. IBK기업은행도 주담대에 이어 전세대출에 대한 대출모집인 접수를 전날부터 중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수요자들은 말 그대로 '대출 난민'이 되고 있다. 충분한 소득과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들조차 대출을 받기 어려워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초강력 규제의 역설, 시장 얼어붙음 현상

정부의 초고강도 대출 규제는 명확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12%로, 대책 발표 직후인 6월 다섯째 주부터 5주 연속 상승폭이 축소되고 있다.

6·27 규제의 핵심 내용을 보면 그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고, 주담대 만기는 30년 이내로 축소했다. 신용대출 한도는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고, 은행들의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는 기존 계획 대비 50%로 감축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가 투기 수요뿐만 아니라 실수요자들까지 시장에서 배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현실은 '대출 차단'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리스크 회피에 나서면서 정상적인 실수요자들마저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고 있다""이는 주택시장의 건전한 수요마저 위축시킬 수 있는 부작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실수요자 보호와 시장 안정의 딜레마

현재 상황은 정책 당국에게 중요한 딜레마를 제기하고 있다.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려는 정책 목표는 달성하고 있지만, 동시에 정상적인 주택 수요마저 억제하면서 시장 자체를 경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층과 신혼부부 등 실수요자들이 대출을 받지 못해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상황은 정부가 추진하는 주거 안정 정책과도 상충된다. 대출 규제로 집값 상승은 억제할 수 있지만, 정작 집을 사야 할 사람들이 시장에서 배제되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향후 정부와 금융당국은 투기 수요 차단이라는 정책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실수요자들의 정당한 주택 구입 수요는 보호할 수 있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대출 난민'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