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SONOW
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받게 하면서 동시에 손해배상까지 받을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우리나라 법제도는 같은 사건에 대해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을 병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가해자는 국가로부터 형벌을 받으면서 동시에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더블 처벌'을 당할 수 있다.
같은 폭행, 다른 목적…형사는 처벌, 민사는 배상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은 목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형사소송은 국가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고, 민사소송은 피해자가 개인적 손해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같은 폭행 사건이라도 형사재판에서는 '사회에 해를 끼쳤으니 벌을 받아라', 민사재판에서는 '내 손해를 갚아라'라는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2024년 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폭행·상해 사건 중 약 35%에서 피해자가 형사고발과 함께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특히 의료비나 휴업손해가 큰 중상해 사건에서는 이 비율이 60%까지 올라간다.
법무부 관계자는 형사처벌과 민사배상은 서로 다른 법적 목적을 가지므로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고 설명했다.
형사 유죄가 민사 승소를 보장하지는 않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면 민사재판에서도 자동으로 승소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두 재판의 증명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범죄를 증명해야 하지만, 민사재판은 '증거의 우세' 정도면 충분하다. 따라서 형사에서 증거부족으로 무죄가 나와도 민사에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2019년 버닝썬 사건에서 일부 피고인은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민사재판에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졌다. 증명 기준의 차이가 만든 결과다.
서울중앙지법 민사부 판례
반대 경우도 있다. 형사에서 유죄가 확정돼도 민사에서 손해 발생이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받지 못할 수 있다.
피해자에게는 '투트랙 구제', 가해자에게는 '이중 부담'
병행소송 제도는 피해자 보호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형사처벌만으로는 피해자의 실질적 손해가 회복되지 않고, 민사소송만으로는 가해자에 대한 응보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음주운전 사고, 학교폭력, 성범죄 등에서 피해자들이 병행소송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가해자는 징역이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으면서 동시에 치료비, 위자료, 휴업손해 등을 배상해야 한다.
다만 가해자 입장에서는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형사처벌과 민사배상은 성질이 다른 별개의 법적 효과
라며 이중처벌에 해당하지 않는다
고 판시했다.
2025년부터 배상명령제 확대로 절차 더욱 간소화
내년부터는 형사·민사 병행소송이 더욱 쉬워진다.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라 '배상명령제' 대상 범죄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배상명령제는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별도 민사소송 없이 바로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제도다.
현재는 성범죄, 아동학대 등 일부 범죄에만 적용되지만, 2025년부터는 폭행·상해, 사기, 횡령 등으로 대상이 확대된다. 피해자는 복잡한 민사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형사재판에서 바로 배상받을 수 있게 된다.
법원행정처는 피해자 구제 시간을 현재 평균 18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배상액에 이의가 있으면 여전히 별도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변호사들은 형사·민사 병행소송은 피해자에게 최대한의 구제 기회를 주는 제도
라면서도 가해자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 현실적인 배상액을 책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