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SONOW
형사재판에서 1심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항소와 상고라는 두 단계의 불복 절차를 마련해두었다. 같은 '재심'이라도 항소는 사실을 다시 따지고, 상고는 법 적용만 검토하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다.
항소는 '모든 걸 다시', 상고는 '법령 위반만' 심사
1심 판결에 불복해 제기하는 항소는 사실심의 성격을 갖는다. 고등법원은 1심에서 인정한 사실관계부터 증거 평가, 양형까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심리한다. 새로운 증거 제출도 가능하고, 증인 신문도 다시 할 수 있다.
대법원에 제기하는 상고는 정반대다. 법률심으로서 하급심에서 확정된 사실관계는 그대로 인정하고, 오직 법령 적용에 오류가 있었는지만 판단한다. 무엇이 일어났는가
가 아니라 법을 제대로 적용했는가
만 묻는다.
2024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형사사건 항소율은 18.7%이지만,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이 변경되는 비율은 약 15%에 불과하다. 상고의 경우 인용률이 5% 미만으로 더욱 까다롭다.
상고 이유는 딱 4가지, 법령 위반이 핵심
형사소송법 제383조는 상고 이유를 명확히 제한한다. 첫째, 법령에 위반한 경우. 둘째, 중대한 사실 오인이 있는 경우. 셋째, 양형이 현저히 부당한 경우. 넷째,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규칙 위반이 있는 경우다.
실제로는 대부분 '법령 위반'을 이유로 상고한다. 구성요건 해석 오류, 위법성 조각사유 무시, 증거능력 없는 증거 채택 등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판결이 마음에 안 든다
는 이유로는 상고할 수 없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사실 인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사실 인정이 논리와 경험 법칙에 현저히 반하거나 증거로부터 도출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른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법령 위반으로 본다.
대법원 형사부 판례
파기환송 vs 파기자판, 대법원의 두 가지 선택
상고가 받아들여지면 대법원은 두 가지 방법으로 사건을 처리한다. '파기환송'은 하급심 판결을 무효화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되돌려 보내는 것이다. 중대한 절차 위반이나 사실 인정에 근본적 오류가 있을 때 주로 사용한다.
'파기자판'은 대법원이 직접 새로운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법령 적용만 잘못됐고 사실관계는 명확할 때 택한다. 파기자판이 나오면 그것으로 재판이 완전히 끝난다.
최근 5년간 형사사건 상고심 처리 현황을 보면, 기각이 약 85%, 파기환송이 약 10%, 파기자판이 약 5%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상고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2025년부터 상고 제한 강화, 중요 사건에만 집중
대법원은 2025년부터 경미한 사건의 상고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벌금 100만원 이하 사건도 대법원까지 갈 수 있지만, 앞으로는 법정형이나 선고형을 기준으로 상고 대상을 제한할 예정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형사재판의 신중성은 유지하되, 정말 중요한 법리 쟁점이 있는 사건에 집중해 심리 품질을 높이겠다
고 설명했다. 독일처럼 '법률심사 허가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변호사들은 항소는 승산이 있어도 상고는 매우 어렵다
며 명확한 법령 위반이 없다면 항소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현실적
이라고 조언한다. 그럼에도 형사사건에서 항소·상고 제도는 억울한 처벌을 막는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