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화재 본사 전경과 보험 차별 이슈를 상징하는 이미지

출처 : SONOW

KCB 데이터 활용해 112만명 중 12만명 소득정보로 저소득층 선별

메리츠화재가 코리아크레딧뷰로(KCB)로부터 제공받은 신용정보를 활용해 저소득·저신용자를 체계적으로 보험 가입에서 배제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보험업계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차별을 넘어 보험업법과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메리츠화재는 2020년부터 KCB의 '소득추정서비스분석' 자료를 토대로 112만 명의 신용정보 중 12만 명의 소득정보를 활용하여 연소득 3,000만원 이하 저소득자와 신용등급 9~10등급 저신용자를 식별해왔다. 핵심적인 배제 메커니즘은 3단계로 구성되었다. 1단계에서 KCB 자료로 대상자를 선별하고, 2단계에서 이들을 '방문적부' 대상자로 분류한 뒤, 3단계에서 방문적부를 통해 실질적으로 가입을 거절하는 방식이었다.

명목상으로는 보험사기 방지를 위한 현장조사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저소득·저신용자들의 자연스러운 가입 포기를 유도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대상 상품은 상해사망담보 5억~8억 원 구간 보험으로, 월 평균 12명 이상이 방문적부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보험업법 제129조 위반 소지 명확…"요율산출 원칙 정면 위배"

법적 분석 결과, 이 사건은 보험업법 제129조(보험요율 산출의 원칙)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출신 법조인은 "보험업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보험업법 제129조는 "보험사는 보험요율을 산출할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통계자료를 기초로 대수의 법칙 및 통계신뢰도를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보험요율 산출 시에는 저소득·저신용자를 포함한 전체 모집단을 기준으로 위험도를 계산하면서, 실제 계약 체결 단계에서는 이들만 선별적으로 배제한 구조적 모순이다. 이는 대수의 법칙에 기반한 통계적 합리성을 훼손하고, 실제 위험집단과 계약자집단의 괴리를 만들어내 다른 가입자들에게 부당한 비용을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그럴 거면 애초 보험요율 산출 단계에서부터 저소득·저신용자를 배제했어야 옳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구조는 저소득·저신용자는 보험 가입조차 못하는 부당한 차별을, 거꾸로 보험가입자들은 저소득·저신용자의 위험이 포함된 비용을 떠안는 부당한 차별을 받게 되는 이중 차별 구조를 만들어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제15조 차별금지 조항도 위배 가능성

금융소비자보호법 제15조 위반 소지도 상당하다. 이 조항은 "금융상품판매업자등은 금융상품 또는 금융상품자문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성별·학력·장애·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계약조건에 관하여 금융소비자를 부당하게 차별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저소득·저신용자란 이유만으로 보험 가입에서 배제하는 건 부당한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 위험도와 소득수준 간의 직접적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일률적 배제는 정당한 사유 없는 차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보험 모집과 관련해 저소득·저신용자를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보험 모집 단계에서는 저소득·저신용자도 가입이 가능한 것처럼 안내하면서 실제론 배제하는 것은 소비자 기망이자 불완전판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어불성설" 강력 비판…업계 내부서도 반발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단지 저소득·저신용자라 해서 보험 가입을 배제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고, "소비자들이 다양한 위험에 대비해 미리 안정을 보장받고 싶어 보험상품에 가입하려는 걸 막아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위험의 크기를 측정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범위에도 개인 신용등급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신용정보 기반 위험평가의 부적절성을 지적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다분한 위험한 영업행위"라고 비판했다.

보험업계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거칠게 비유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보험사기범이란 얘기와 다르지 않다"며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메리츠화재 내부에서도 "명백히 부당한 차별"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현장 보험설계사들은 "현장을 모르는 책상물림의 결정"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금감원 소극적 대응 비판…"감독지침은 법규 아니라 제재 어려워"

금융감독원의 대응은 소극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KPI뉴스 취재 당시 금감원은 "감독지침은 법규가 아니라 제재하기 힘들다"며 "18년 전에 정한 감독지침인데 그때와 지금은 보험영업 환경이 바뀌었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규제 당국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메리츠화재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 조치는 발표되지 않았다. 메리츠화재 측도 보도 직후 "상황을 확인한 뒤 답변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해명이나 개선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상태다. 2007년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신용등급만을 기준으로 보험계약의 인수를 제한하거나 거절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지침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안이기도 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업은 그 특성상 공공성이 강하게 요구된다"며 "저소득·저신용자 가입을 배제하는 행위는 보험업의 사회적 신뢰 훼손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험업계 전반의 언더라이팅 기준 투명성 제고와 차별 방지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