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SONOW
시민단체까지 나선 한진 전환사채 논란
한진 그룹의 전환사채(CB) 거래를 둘러싼 논란이 시민단체의 공식적인 문제 제기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조현민 한진 사장 등 지배주주 일가가 전환사채를 주식을 저가로 취득하는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강력히 지적했다.
이번 논란은 지난달 비즈워치가 한진 CB의 문제점을 최초로 제기한 이후 점차 확산되어 왔다. 이제 시민단체까지 한진 경영진의 편법적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단순한 기업 거버넌스 문제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문제의 시작은 한진이 지난달 유진투자증권을 대상으로 발행한 3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다. 표면적으로는 일반적인 기업 자금조달 수단으로 보이지만, 그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지배주주 일가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편법적 장치가 숨어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거래가 단순한 일회성 사안이 아니라 향후 더 큰 규모로 확대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진은 현재까지 콜옵션의 극히 일부만을 행사했지만, 제도적으로는 훨씬 큰 규모의 행사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놓았다.
콜옵션의 구조적 문제점
이번 한진 전환사채의 핵심 문제는 콜옵션(매수선택권) 조항에 있다. 한진이 유진투자증권이 보유한 CB의 27.51%를 조현민 사장, 노삼석 한진 대표이사, 류경표 한진칼 부회장, 김현우 한진 경영기획실장, 서민석 한진 재무관리실장 등 그룹 경영진에 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매수선택권이 달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달 10일 한진은 유진투자증권에 CB 일부를 조 사장 등 5명에게 매도할 것을 청구했다. 이때 적용된 전환가격은 주당 1만8630원으로, 당시 시세보다 저렴한 수준이었다. 비록 이번 콜옵션 행사 물량은 전환사채의 0.1%(약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한진은 향후 27.51%까지 행사량을 늘릴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해 놓은 상태다.
이러한 구조의 문제점은 여러 층위에서 나타난다. 첫째, 전환사채 발행의 본래 목적인 기업 자금조달과는 거리가 먼 지배주주 특혜 제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콜옵션을 행사할 때 발행회사가 아닌 특정 개인들에게 저가 매도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무상 양도와 다름없다는 점이다.
셋째, 이러한 편법이 제도적으로 방치될 경우 다른 기업들도 유사한 수법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시장 전체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경제개혁연대의 강력한 비판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한진의 거래를 '경영상 목적이 아닌 편법적인 지분 확보의 수단'이라고 단정적으로 비판했다. 이는 한진의 행위가 정당한 기업 경영 활동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경제개혁연대는 "한진은 콜옵션을 행사하면서 발행회사가 아닌 지배주주 일가가 매도해줄 것을 청구한 것으로, 사실상 콜옵션을 무상양도한 것과 다르지 않다"며 거래의 본질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는 겉으로는 정상적인 금융거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배주주에게 이익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편법이라는 의미다.
더 나아가 경제개혁연대는 "이러한 편법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한진은 더 큰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해 지배주주 일가에게 저가 지분 취득의 기회를 제공하고, 다른 회사들도 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한진의 사례가 다른 기업들에게 악용 사례로 전파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단순히 한진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한국 자본시장 전체의 건전성과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대기업 지배주주들이 이런 편법을 활용할 경우 일반 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고, 자본시장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 개선 요구와 금융당국의 역할
경제개혁연대는 문제 지적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도 제시했다. "금융당국은 전환사채 발행 목적에 부합하도록 콜옵션 행사 시 발행회사에게만 매도할 수 있도록 한정해 콜옵션이 제3자에게 무상 양도되지 않도록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의 전환사채 제도가 갖고 있는 허점을 메우자는 제안이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한진과 같은 편법적 활용이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규제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제안된 개선 방안의 핵심은 콜옵션 행사 시 매도 대상을 발행회사로 한정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배주주 개인이 저가로 주식을 취득하는 편법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동시에 전환사채 본래의 목적인 기업 자금조달 기능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금융당국의 대응 필요성
현재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진 사례가 선례가 되어 다른 기업들이 유사한 편법을 사용할 경우,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환사채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데, 이것이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 도구로 변질될 경우 제도 자체의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이번 사안을 계기로 전환사채 관련 규제를 점검하고 필요한 개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전망과 파급 효과
이번 한진 전환사채 논란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대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문제점을 다시 한번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오랫동안 지배주주 일가의 사익 추구 행위로 인한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번 사안은 그런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둘째, 금융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편법의 문제다. 아무리 정교한 제도라도 악용하려는 의도가 있으면 허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제도 설계 시 다양한 악용 가능성을 고려한 예방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셋째, 시민사회의 감시 역할이다. 이번 사안은 언론 보도와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를 통해 공론화되었다. 이는 복잡한 금융거래에 숨어 있는 편법도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감시를 통해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이 사안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금융당국의 대응에 달려 있다. 만약 적절한 제재나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유사한 편법들이 다른 기업들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강력한 제재와 제도 개선이 이뤄진다면, 자본시장의 공정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안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자본시장 선진화라는 한국 경제의 숙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경제 규모에 걸맞은 제도적 성숙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이런 편법들을 차단할 수 있는 보다 정교하고 포괄적인 규제 체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