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SONOW
트럼프 정상회담을 앞둔 전략적 민관 협력 체계 구축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주요 재계 총수들과 가진 간담회는 25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대미 투자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전략적 준비 과정으로 해석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에 요구하고 있는 대미 투자 확대와 관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민관 원팀" 체제 구축이 이번 간담회의 핵심 목표였다.
참석자 구성만 봐도 이번 회의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등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요 그룹의 최고 경영진이 총출동했다. 이는 단순한 의견 수렴을 넘어 국가 차원의 경제외교 전략을 수립하는 자리였음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이 "정부의 최대 목표는 경제를 살리고 지속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수출 여건의 변화로 정부와 기업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함께 힘을 모아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강조한 것은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약 2시간에 걸친 간담회에서는 상호·품목 관세로 인한 어려움과 대미 세부 투자 계획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과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대응하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핵심 산업별 대미 투자 전략과 공급망 재편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조선·반도체·자동차·방산·바이오·에너지 등 6대 핵심 산업 분야의 구체적 투자 계획이다. 이들 분야는 한미 간 핵심 협력 분야이자 주요 통상협상 대상 영역으로, 향후 양국 경제관계의 방향을 좌우할 중요한 산업들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미국 방문을 통해 구체화한 한미 공급망 협력 강화와 현지 반도체 투자 확대 계획을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며, 추가 투자 확대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안보 정책과 한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만나는 전략적 협력 모델로 평가된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이미 진행 중인 조지아주 사바나 공장 건설과 함께 전기차 생산 확대 계획을 공유했다. 현대차의 미국 내 전기차 생산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 도입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과도 연결되어 있어,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도 지속 가능한 투자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조선업 분야에서는 한화그룹이 주도하는 'MASGA(Maritime Administration Shipbuilding and Gantry Alliance)' 프로젝트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 참여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는 중국과의 해상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추진하는 조선업 부활 정책과 한국의 조선 기술력이 결합되는 전략적 협력 사례다.
일자리 창출과 현지화 전략의 정치적 의미
각 기업이 강조한 공통점은 "현지 투자와 일자리 창출 효과"였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중시하는 정치적 성과 지표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현대차, LG, SK 등 주요 그룹들이 이미 추진 중인 미국 내 공장 건설과 증설 계획을 통해 창출될 일자리 규모와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재용 회장이 밝힌 "국내에서도 지속해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기 위한 고부가 일자리 투자 확대" 계획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대미 투자 확대가 국내 산업 공동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전략의 일환임을 보여준다.
트럼프 관세 정책에 대한 선제적 대응 전략
이번 간담회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 관세 정책에 대한 선제적 대응 성격이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중국에 대한 60% 관세, 기타 국가에 대한 10-20% 보편 관세 부과를 예고해왔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대해서도 관세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관세 대신 투자"라는 전략적 접근을 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접근법은 과거 일본이 1980년대 미일 무역 갈등 시 택했던 전략과 유사하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관세 압박에 대응해 대규모 현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무역 갈등을 완화시킨 바 있다. 한국 정부와 재계도 이러한 "투자를 통한 관세 회피" 전략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간담회에서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투자 계획과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정상회담에서 관세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것임을 시사한다.
한국 경제외교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과제
이번 민관 간담회는 한국 경제외교의 패러다임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과거 정부 주도의 일방향적 경제외교에서 벗어나 정부와 기업이 긴밀히 협력하는 "원팀"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단순한 정치적 수사나 외교적 협상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들이 대두되면서,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을 바탕으로 한 협상 전략이 필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에는 여러 과제도 따른다. 첫째, 대미 투자 확대가 국내 산업 공동화로 이어질 위험이다. 주요 기업들의 해외 투자 확대가 국내 일자리 감소와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둘째, 중국과의 관계 악화 가능성이다. 대미 투자 확대와 공급망 협력 강화는 필연적으로 대중국 의존도 감소를 의미하며, 이는 중국의 반발을 야기할 수 있다. 한국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투자의 지속가능성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대응한 단기적 투자가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제들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5일 한미 정상회담은 이러한 전략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치밀한 사전 준비와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의 한미 경제관계 발전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