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SONOW
주거 취약계층 180만 명 시대, 현행 지원체계의 한계
국내 주거복지 정책이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쪽방, 고시원, 여인숙, 비닐하우스 등 주택이 아닌 거처에서 생활하는 가구가 2005년 5만4천여 가구에서 2015년 36만여 가구로 급속히 증가했으며, 2018년 기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까지 포함하면 **111만여 가구, 약 180만 명**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정부는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통해 위기상황에 처한 저소득층에게 임시거처를 제공하고 있다. 이 제도는 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 75% 이하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며, 2025년 기준 1인 가구 179만 4,010원, 4인 가구 457만 3,330원 이하의 소득 기준을 적용한다. 주거지원 한도액은 지역별로 차등화되어 있으며, 대도시 1인 가구 기준 월 63만 6,600원, 중소도시 41만 7,500원, 농어촌 23만 9,800원을 상한으로 하여 **1개월간 지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체계는 근본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주거취약계층 지원 강화, 최저주거기준 개정, 고시원 최소기준 마련 등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권고"하며 현행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지적했다. 특히 긴급복지지원의 1개월 한정 지원은 장기적 주거안정에는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임시거처의 질적 수준 역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주거급여와 공공임대주택, 점진적 개선에도 불구한 접근성 한계
정부의 핵심 주거복지정책인 **주거급여**는 2025년 대폭 확대됐다. 보건복지부는 기준 중위소득을 6.42% 인상하여 4인 가구 기준 주거급여 선정기준을 292만 6,931원으로 설정했으며, 임차가구 기준임대료도 급지·가구별로 1.1만 원~2.4만 원(3.2~7.8%) 인상했다. 이로 인해 서울 지역 1인 가구의 경우 월 최대 36만 7천 원까지 임차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이주지원사업**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쪽방, 고시원, 여인숙, 비닐하우스, 노숙인시설, 컨테이너, 움막, PC방, 만화방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매입임대, 전세임대, 민간임대주택 이주를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최대 8,000만 원의 보증금 무이자 및 저리 융자(5,000만 원까지 무이자, 5,000만 원 초과분은 연 1.2~1.8%)를 지원하며, 이주비로 40만 원까지 지원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의 접근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국토교통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고시원에 거주 중인 한 시민이 공공임대주택 이주 기회를 받았지만 홀로 이사를 할 용기가 없어 입주를 포기"하는 사례가 보고되는 등, 제도적 지원과 실제 수요자의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주거복지센터를 통한 상담과 이사 지원이 병행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충분한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한 상황이다.
또한 공공임대주택 자체의 공급량도 수요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LH와 지방공사가 운영하는 매입임대주택의 경우 신청 경쟁률이 높아 실제 입주까지 상당한 대기시간이 소요되며, 이 기간 동안 주거취약계층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별 격차와 협력체계 부족 문제
주거복지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은 **지역별 편차**다. 서울시, 경기도 등 수도권과 광역시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주거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은 인프라와 예산 부족으로 인해 제한적인 지원만 가능한 상황이다. 세종시의 경우 긴급주거비 지원사업으로 가구당 250만 원 이내(연체 임차료 180만 원, 연체 공과금 70만 원)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는 예산 소진 시까지만 가능한 한시적 지원이다.
특히 **민관 협력체계의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주거지원은 주로 공공 영역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민간의 숙박업계나 부동산업계와의 체계적 연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긴급상황 발생 시 즉시 활용 가능한 임시거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야간이나 휴일 등 업무시간 외 긴급지원 요청에 대한 대응능력도 제한적이다.
또한 **부처 간 칸막이 문제**도 지적된다. 긴급복지지원은 보건복지부, 주거급여는 국토교통부, 주거취약계층 이주지원은 LH가 담당하는 등 다원화된 지원체계로 인해 수혜자 입장에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통합적 서비스 제공이 어려운 상황이다. 각 기관별로 상이한 소득기준과 자산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동일한 가구가 제도별로 서로 다른 지원 여부 판정을 받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미래 지향적 주거안전망 구축을 위한 정책 과제
한국의 주거복지정책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통합적 지원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재 분산되어 있는 긴급복지지원, 주거급여, 공공임대주택 이주지원을 하나의 창구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주거복지 통합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신청자가 한 번의 상담으로 모든 지원 가능 제도를 안내받고, 개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지원책을 매칭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민관 파트너십 확대**도 중요한 과제다. 미국의 ReloShare 사례처럼 숙박업계의 유휴자원을 긴급 주거지원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내 호텔·모텔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평일 저활용 객실을 긴급상황 발생 시 임시거처로 제공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면, 현재 공공시설 중심의 제한적 임시거처 공급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기술 활용 확대**도 필수적이다. AI 기반 수요 예측 시스템을 통해 지역별·시기별 긴급 주거지원 수요를 사전에 파악하고, 실시간 임시거처 정보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신속한 배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모바일 앱을 통한 24시간 신청 접수 체계를 마련하여 접근성을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예방적 주거복지 관점**으로의 전환이 중요하다. 위기상황 발생 후 사후적으로 지원하는 현재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주거불안정 위험군을 사전에 발굴하고 예방적 지원을 제공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위험 요인 예측 모델 개발과 함께,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활용한 조기 발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한국의 주거복지정책은 양적 확대에서 질적 개선으로, 분절적 지원에서 통합적 지원으로, 사후적 대응에서 예방적 접근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180만 명에 달하는 주거취약계층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진정한 주거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부문이 함께 나서는 범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