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대북 NGO 대표들과 면담하는 모습

출처 : SONOW

남북협력기금 집행 ‘제로’가 남긴 공백과 충격

2024년 남북협력기금의 인도적 지원 집행액은 사상 첫 ‘0원’을 기록했다. 2007년 2,272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가 이어져 왔지만, 기금이 전혀 쓰이지 않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통계청 통일지표에 따르면 2024년 기금 총 조성액은 6,269억 원(전년 대비 1,319억 원↑)에 달했으나, 집행 부재로 ‘사실상 동결 기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contentReference[oaicite:0]{index=0}

정동영 장관은 “집행 0원은 경악할 일”이라고 직격하며 민간단체 인도지원 채널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 시절 남북 대화 단절과 유엔 제재 환경 속에서 사실상 ‘셔터’를 내린 공식 지원 통로를 다시 열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접촉신고 지침 폐지: ‘민간 주도’ 교류 패러다임 전환

통일부는 7월 말 『북한주민 접촉신고 처리 지침』을 전격 폐지했다. 그간 대북 NGO는 제3국 국적 활동가를 ‘우회 동원’하는 방식을 택해야 했는데, 앞으로는 국내 활동가가 신고만으로 북측과 직접 접촉할 수 있다. 북민협 소속 67개 단체는 “이제야 인도주의 창구가 열렸다”며 신속 집행을 요청했다. :contentReference[oaicite:1]{index=1}

정부는 신고 간소화와 함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핵심은 ▲인도적 사업 예외조항 확대 ▲전자신고 플랫폼 도입 ▲접촉 후 72시간 내 보고 의무 완화다. 제도적 허들이 낮아지면, 코로나19 이후 5년 넘게 중단됐던 의료·보건 키트, 영유아 영양 지원 사업이 우선 재개될 전망이다.

재개 조건: ‘북측 응답’과 기금 거버넌스 개편

정 장관은 지원 재개 조건으로 “북측과의 실질적 접촉 성사”를 제시했다. 과거 ‘상시 기금–사후 보고’ 방식에서 ‘접촉 성사–즉각 집행’ 방식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다만 남북협력기금은 감사를 통해 ▲사업평가 부실 ▲운용수익 낮음 ▲중복 지원과 투명성 결여 등이 지적돼 왔다. 감사원은 2024년 기금 감사에서 ‘운용수익률 1.6%→0.9% 하락’과 ‘지원단체 사업평가서 43% 미제출’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contentReference[oaicite:2]{index=2}

“기금 운용·평가·감사 시스템을 전면 개선하지 않으면 지원 재개는 ‘또 다른 적자 프로젝트’가 될 것” —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 중

이에 통일부는 ▲성과지표(SMART) 기반 평가 ▲3자 회계 감사 의무화 ▲AI·블록체인 기반 트래킹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인도적 협력 재시동: 지방정부·기업·시민사회 연계 기회

기금 집행 재개는 경제적·정치적 파급효과도 크다. 지방정부는 2021년 제정된 평화지역협력법을 활용해 ‘광역단체–NGO–북측 파트너’ 3자 협약 구도를 가동할 수 있고, 의료·바이오·스마트농업 기업은 물적 지원과 기술 노하우를 결합한 PPP(공공·민간 파트너십) 모델로 진출을 모색 중이다. IDF(국제개발금융) 기준 대북 인도지원 시장 규모는 연간 1.1~1.3조 원으로 추정되며, 국회 예결위 산출치는 “재개 첫해 2,200억~2,600억 원 집행 가능”으로 전망한다.

정책 환경이 ‘봉쇄→조건부 개방’으로 전환되는 역사적 변곡점에서, 민간단체는 실사·모니터링·성과관리 능력을, 기업은 ESG·상생 가치를, 정부는 투명·책임 행정을 한 몸체처럼 맞물려야 한다. 만약 초기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가동으로 이어지는 ‘연쇄 해빙’ 시나리오도 현실화될 수 있다.

결론·제언: “마중물 지원, 투명성·신뢰가 생명”

정동영 장관의 선언은 기금 재가동을 위한 필요조건을 제공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북측의 응답, 국제 제재 환경, 국내 정치 리스크라는 3대 변수와 더불어, 기금의 투명성·효율성·성과관리 체계가 정교하게 설계·이행되어야 한다. ‘마중물’‘누수’로 변질되지 않도록, 정부·NGO·기업·감사기구 간 4중 체크 앤드 밸런스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