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SONOW
상반된 R&D 투자 전략, 극명한 대조
국내 대표 항공·우주 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대한항공이 올 상반기 연구개발(R&D) 투자에서 극명한 차이를 나타냈다. 19일 양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KAI의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 비용은 총 988억원으로 전년 동기(742억원) 대비 3.97% 증가했다.
KAI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6.55%로 상당히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세부적으로는 개발비 479억원, 연구개발비 509억원이 투입되었다. 이는 KAI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대한항공은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비 296억원 지출에 그쳐 지난해 500억원과 비교하면 40.8%나 감소했다. 매출액 대비 비율은 0.37%로 KAI와 비교해 현격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양사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전략적 방향성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KAI의 R&D 비용 증가는 여러 대규모 방산 프로젝트의 본격화와 직결되어 있다. KF-21 보라매 전투기 양산 계약, 소형무장헬기(LAH) 2차 양산, 수리온 성능개량 사업, 위성·발사체 개발 등이 동시에 추진되면서 연구개발 투자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회사 측은 "미래 항공우주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핵심 사업에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KAI가 방산 분야 중심의 공세적 연구개발 투자 전략을 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1조7775억원 전자전기 사업 수주전 관전 포인트
양사의 엇갈린 R&D 투자 행보는 향후 펼쳐질 방위사업청의 '한국형 전자전기 연구개발 사업' 수주전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총 1조7775억원이 투입되는 이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항공은 LIG넥스원과, KAI는 한화시스템과 각각 협력해 뛰어들 전망이다.
전자전기는 공중에서 적의 레이더, 통신, 전자 시스템을 교란·무력화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핵심 전력이다. 특히 유사시 전장 주도권 확보와 아군 자산 보호를 위한 전자전 능력은 현대전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북한의 고도화된 방공망과 통제체계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될 이 시스템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사업은 단순한 무기체계 도입을 넘어 한국의 항공 전자전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략적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참여 기업들의 기술력과 경험, 그리고 지속적인 R&D 투자 역량이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KAI의 플랫폼 통합 역량 vs 대한항공의 개조 경험
양사는 각각 다른 강점을 내세우며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KAI는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 개발 과정에서 AESA 레이더, 전자광학 표적추적장비, 전자전 장비, 각종 무장체계 등을 단일 플랫폼에 통합하고 실전 운용 환경에서 비행·사격 시험을 통해 역량을 입증했다.
이러한 플랫폼 통합 능력과 운용 노하우는 전자전기 개발에 필요한 핵심 역량으로 평가받는다. KF-21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된 시스템 통합 기술과 실제 비행 테스트 경험은 다른 업체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
KAI 측은 "이번 전자전 사업은 항공기 설계와 전자전 임무 장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체계개발 능력이 좌우할 것"이라며 "KAI는 다양한 플랫폼 개발을 통해 최적화된 설계 및 체계통합 자체 수행 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군/민 감항인증 전환 경험을 보유한 유일한 기업이다"라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은 상용 항공기를 개조해 인증을 확보한 경험과 상용 항공기를 군용항공기로 개조해 군 감항인증을 받은 경험을 주요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이를 바탕으로 기본항공기 구매, 형상 설계, 임무장비 항공기 장착, 체계 통합 등 민용 비즈니스 제트기를 군용 전자전 임무항공기로 개조하는 역량을 어필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의 이러한 접근법은 기존 플랫폼을 활용해 비용 효율성을 높이고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상용기 개조를 통한 특수목적 항공기 개발 경험은 전자전기와 같은 특수 임무 항공기 개발에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노하우다.
R&D 투자 차이가 수주 결과에 미칠 영향
양사의 상반기 R&D 투자 격차는 향후 기술 경쟁력과 제안서 품질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KAI의 지속적이고 증가하는 R&D 투자는 최신 기술 확보와 시스템 고도화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특히 방산 분야에서는 기술의 연속성과 지속적인 개선이 중요한 만큼, 꾸준한 투자가 경쟁 우위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대한항공의 R&D 투자 감소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비 감소는 전년 저피탐 무인 편대기 연구원 수주사업 비용 영향으로 인한 기저효과"라며 "향후 무인기 개발 시장 선도 목표로 스텔스 핵심 기술 개발, 유·무인 복합체계, 군집 제어, 자율 임무수행 등 차세대 기술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대한항공이 재무구조 개선에 발맞춘 보수적인 투자 전략을 택하고 있지만, 핵심 분야에서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이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무인기와 스텔스 기술 분야에서의 연구 지속은 미래 방산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
방산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전자전기 사업에서 단순한 R&D 투자 규모보다는 관련 기술의 완성도와 실전 적용 가능성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KAI의 경우 KF-21을 통한 실증된 시스템 통합 능력이, 대한항공의 경우 검증된 항공기 개조 기술이 각각의 강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파트너사의 역량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KAI와 협력하는 한화시스템은 국내 최대 방산업체로서 전자전 장비 개발 경험이 풍부하며, 대한항공과 파트너십을 맺은 LIG넥스원 역시 레이더와 전자전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향후 전망과 시사점
이번 전자전기 사업 수주전은 단순히 한 건의 프로젝트를 넘어 향후 한국 방산업계의 판도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KAI와 대한항공 모두 무인기, 차세대 전투기 등 미래 항공 전력 개발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이번 사업의 결과가 향후 다른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양사의 R&D 투자 전략 차이는 각자의 사업 환경과 전략적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KAI는 순수 방산업체로서 방산 분야 집중 투자 전략을 택하고 있으며, 대한항공은 항공운송업과 방산업을 병행하는 복합 기업으로서 균형잡힌 투자 접근법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번 전자전기 사업의 결과는 단순한 기술력 비교를 넘어 각 기업의 전략적 방향성과 미래 비전을 평가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위사업청의 평가 결과에 따라 국내 방산업계의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향후 한국 방산업의 발전 방향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