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SONOW
BBC, 스포티파이, 오디블이 동시 선정한 올해의 화제작
베스트셀러 작가 토리 피터스(Torrey Peters)의 소설집 '스태그 댄스(Stag Dance)'가 BBC의 '올해 최고의 책 12선', 스포티파이의 '올해 최고의 소설', 오디블의 '올해의 베스트'에 동시 선정되며 문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한 편의 중편소설과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으로, 피터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공동체와 욕망의 거친 경계면들을 탐구하며 트랜스 문학의 한계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터스는 이번 작품을 통해 '산성같이 재미있고 그 범위에서 숨막힐 정도(acidly funny and breathtaking in its scope)'라는 찬사를 받으며, 독자들을 자극하고 불안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즐겁게 한다는 평가를 얻었다. 특히 성별과 전환에 대한 '놀라운 비전(astonishing vision of gender and transition)'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현대 퀴어 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인정받고 있다.
불법 벌목장을 배경으로 한 성별 정체성 탐구 실험
표제작 '스태그 댄스'는 불법 겨울 벌목 작업에 종사하는 불안한 벌목꾼들이 댄스 파티를 계획하면서 시작된다. 이들 중 일부는 자원해서 여성으로 변장하고 춤에 참가하기로 한다. 이러한 설정은 역사적으로 남성 중심의 거친 노동 환경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관습을 바탕으로 하지만, 피터스는 이를 현대적 성별 정체성 탐구의 무대로 활용한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미국 서부의 벌목 캠프에서는 실제로 여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남성들이 여성 역할을 맡아 사교 댄스를 추는 일이 흔했다.
가장 강한 도끼꾼이 여성으로 춤을 추겠다고 선언하면서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는 예쁜 젊은 벌목꾼과 기묘한 경쟁 관계에 빠지게 되고, 이는 집착, 질투, 배신의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피터스는 이 과정을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 그리고 성별 정체성의 유동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전개한다.
집착과 질투가 만들어내는 성별 정체성의 복잡한 역학관계
소설의 핵심은 두 벌목꾼 사이에 형성되는 복잡한 심리적 역학관계다. 가장 강한 도끼꾼의 여성으로서의 댄스 선언은 단순한 역할 놀이를 넘어서 그의 내재된 정체성 욕구를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젊고 매력적인 벌목꾼과의 경쟁은 성적 매력과 성별 정체성이 얽힌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피터스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 전통적 남성성의 기준과 그에 대한 도전이 어떻게 개인의 내면과 공동체 전체에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집착과 질투라는 원초적 감정이 성별 정체성의 탐구와 만날 때 발생하는 폭발적 에너지를 포착한다. 벌목꾼들의 거친 생활 환경은 이러한 감정들을 더욱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배경이 되며, 문명의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은 공간에서 개인의 진정한 욕망과 정체성이 어떻게 분출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현대 도시 사회에서는 쉽게 관찰하기 어려운 인간 본성의 원시적 측면을 조명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트랜스 문학 장르의 새로운 지평과 역사적 맥락의 재해석
피터스는 이번 작품을 통해 트랜스 문학이 현대적 도시 환경을 벗어나 역사적 맥락에서도 유의미한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세기 말 미국 서부의 벌목 캠프라는 설정은 성별 이분법이 상대적으로 유연했던 특수한 사회적 공간을 활용한 것으로, 현재의 성별 정체성 담론을 역사적 맥락에 투영하는 실험이다. 이는 트랜스젠더 경험이 현대적 현상이 아니라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존재해온 보편적 인간 경험임을 시사한다.
작품의 클라이맥스인 '큰 밤(big night)'에서 펼쳐지는 댄스 파티는 성별과 전환에 대한 작가의 비전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피터스는 이를 통해 성별 정체성이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수행되고 실험되는 것임을 보여주며, 동시에 그러한 실험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변혁적 힘을 포착한다. BBC, 스포티파이, 오디블의 동시 선정은 이러한 피터스의 문학적 성취가 장르를 넘나들며 광범위한 독자층에게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