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SONOW
대어급 IPO 줄줄이 전략 수정…시장 위축 현실화
정부의 증시 부양 기조에도 불구하고 상법 개정과 주주권 강화, 중복상장 규제 논의가 겹치며 IPO(기업공개)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코스피 신규상장 기업은 단 3곳에 그쳤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7곳보다 57% 감소한 수치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당초 3조원 규모로 예상됐던 IPO를 무기한 연기했으며, 케이뱅크는 상장 일정을 2026년으로 미뤘다. 두나무는 아예 상장 계획을 백지화하고 내부 구조조정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LS는 계열사 분할상장을 강행하며 정면돌파 전략을 택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IPO를 준비 중인 기업 중 약 40%가 상장 일정을 연기하거나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나 복잡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들의 우려가 크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규제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대형 IPO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상장보다는 M&A나 사모펀드 투자 등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규제 강화의 양날…투명성 vs 상장 매력도
현재 논의되고 있는 규제 강화의 핵심은 지배구조 투명성과 주주보호 강화다. 금융위원회는 중복상장 심사를 강화해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을 방지하고, 상법 개정을 통해 소액주주 권리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복상장 규제의 경우, 기존에는 형식적 요건만 충족하면 가능했던 계열사 분할상장이 이제는 "모회사 주주에게 실질적 이익"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재벌 계열사들의 '쪼개기 상장'을 통한 지배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의도다.
"단기적으로는 상장 매력도가 약화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가치 할인요인을 줄여 시장 신뢰를 높일 수 있다." -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
실제로 한국 증시의 PER(주가수익비율)은 12.8배로 미국(26.2배), 일본(15.4배)보다 현저히 낮다. 이는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과 투명성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금융당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는 단기적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상장 기피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불확실성과 국내 정책 변수의 복합 작용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금리 정책과 중국의 경기 회복 속도,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가 여전히 5.25~5.50%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어 성장주에 대한 투자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국내적으로는 부동산 정책 변화와 가계부채 관리 방향이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여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던 개미들이 고금리와 부동산 가격 조정으로 유동성 부족을 겪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개인투자자 비중이 40%를 넘는 국내 시장 특성상 이들의 투자 여력 회복이 IPO 시장 정상화의 열쇠"라며 "정책 불확실성 해소와 함께 시장 유동성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기준도 까다로워지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구사항이 강화되면서 기업들은 상장 전 내부 시스템 정비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선제적 대응 전략과 시장 정상화 전망
금리와 관세, 정책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대기 중인 IPO 수요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은 약 150여 곳에 달하며, 이 중 30여 곳이 대형 IPO로 분류된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공시 정합성, 내부통제 시스템, 배당 및 자사주 정책 등 신뢰지표를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중복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의 경우 "모회사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관건이다.
LS그룹의 계열사 분할상장은 새로운 규제 기준하에서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만약 성공적으로 상장을 완료한다면 다른 대기업들에게도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는 IPO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우수 기업에 대한 상장 심사 기간 단축, 공모가 산정 방식 개선, 기관투자자 의무보유 제도 도입 등이 논의되고 있다.
패러다임 전환의 기로에 선 한국 증시
'상장=규제' 인식에서 '투명성=경쟁력'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기적인 상장 절차 복잡화를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기업가치 제고와 투자자 신뢰 회복이라는 더 큰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과 싱가포르는 엄격한 상장 기준을 통해 시장 신뢰도를 높였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우수 기업과 글로벌 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홍콩 역시 중복상장 규제를 강화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질적 성장을 이뤄냈다.
국내 증시도 이러한 '고통스러운 성장' 과정을 거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현재의 규제 강화가 일시적 위축을 가져올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는 목표 달성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LS의 도전이 성공 모델이 될지, 아니면 규제의 높은 벽을 재확인하는 사례가 될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상장 성공 여부를 넘어서 한국 IPO 시장의 미래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