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테크비즈센터에서 열린 원정포럼 현장, AI 혁신체제 논의 모습

출처 : SONOW

AI 범용기술 시대의 한국, 겉과 속이 다르다

20일 대덕테크비즈센터에서 열린 원정포럼에서 충격적인 진단이 나왔다. 한국의 AI 혁신체제가 심각한 구조적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권기석 한밭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발제를 통해 "AI는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에 이은 네 번째 범용목적기술(GPT)"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AI가 범용기술의 3대 조건인 △광범위한 적용성 △지속적 개선 △보완적 혁신 유도를 모두 충족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제조업부터 의료, 금융까지 모든 산업에 적용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성능이 개선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범용성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응체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면적 지표만 보면 한국의 AI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구 10만 명당 AI 관련 특허 건수 세계 1위, AI 스타트업 투자 규모 세계 9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겉모습일 뿐이다. 2022년 기준 이공계 박사 중 AI 전공자는 6%에 불과하고, 그나마 있는 고급인재들도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권 교수는 "특허는 많지만 실제 글로벌 시장에서의 독자기술과 플랫폼 경쟁력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며 한국 AI 산업혁신체제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했다. 내수 중심의 확산에는 성공했지만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행 따르는 과학기술정책, 구조적 문제 심화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고질적인 유행 추종 현상이다.

"한국 과학기술정책만큼 유행을 타는 분야가 없다. 줄기세포, 과학벨트, 4차 산업혁명에 이어 이제 AI가 모든 과학기술 이슈를 누르고 있다."

이러한 유행 추종은 R&D 투자의 쏠림현상을 가져온다. AI라는 키워드만 붙이면 예산이 배정되고, 다른 기초과학 분야는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권 교수는 "AI 적용만 강조할 뿐, AI 연구개발에 대한 전략적 로드맵이 부재하다"며 정부 정책의 방향성 부재를 비판했다.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균형, 장기적 관점의 연구개발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어 AI라는 범용기술이 가져올 근본적 변화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는 AI 인재 양성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양적 확대에만 치중할 뿐 질적 수준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 양성에는 실패하고 있다. 특히 AI 분야의 핵심인 고급 연구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은 한국 AI 생태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이 해법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획일적 접근에서 벗어난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설성수 전 한남대 교수는 "AI와 기존 과학기술을 투 트랙으로 가져가되, 새로운 기술 시스템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며 혁신적 정책 전환을 주문했다.

특히 AI가 사람 의존성이 높은 기술인 만큼 인재 확보를 위한 파격적 투자와 정책 믹스가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찬구 충남대 교수는 "정부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협력적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승헌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AI 발전과 함께 규제 체계도 동반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SG나 탄소중립처럼 자발적이었던 것들이 의무화되는 전 세계적 추세에 맞춰 AI 분야도 기업의 책임을 의무화하는 메타감독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성국 원정연구원 AI융합연구센터장은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제시했다. "인공지능 기반의 기술혁신 통합 프레임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상황에 대한 전면적 분석과 문제점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시스템 전체의 재설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전환의 골든타임, 지금이 기회다

AI라는 범용기술의 등장은 한국 과학기술 혁신체제에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특허 건수나 투자 규모 같은 양적 지표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과 지속가능한 혁신 생태계 구축에 집중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유행 추종형 정책에서 벗어나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바탕으로 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AI 인재 확보를 위한 파격적 투자,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균형, 그리고 민관학 협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 구축이 시급한 과제다. 이번 원정포럼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이 실질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