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SONOW
1000억 달러 투자로 구체화된 애플-삼성 협업
애플과 삼성전자 간의 반도체 협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2025년 8월 6일(미국 현지 기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발표한 1000억 달러(약 139조 1000억 원) 규모의 미국 추가 투자에서 삼성전자와의 협업이 핵심 요소로 부각됐다.
이번 발표로 애플의 미국 내 총 투자 금액은 6000억 달러(약 834조 5400억 원)에 달하게 됐다. 애플은 지난 2월 5000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이번 추가 투자는 '미국 제조 프로그램(American Manufacturing Program)'의 일환으로 미국 내 부품 제조업체들과의 협력 확대를 목표로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애플이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테일러 팹(반도체 생산공장)을 활용해 차세대 칩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애플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사용된 적 없는 혁신적인 신기술 칩 생산을 위해 협력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출하되는 아이폰 및 애플 제품의 전력 소비와 성능을 최적화하는 칩을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제조 위탁을 넘어선 기술 개발 차원의 협력임을 시사한다. 애플이 '혁신적인 신기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기존 제품의 단순 생산이 아닌 새로운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했음을 의미한다.
이미지센서 협업의 전략적 배경
업계에서는 이번 협업의 핵심이 스마트폰 카메라용 이미지센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재 애플 제품의 핵심 반도체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전량 TSMC를 통해 생산되고 있어, 새로운 협업 분야로는 이미지센서가 가장 유력하다.
애플이 이미지센서 공급선 다변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관세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현재 애플 카메라용 이미지센서 대부분은 소니 제품을 사용하지만, 소니의 생산 거점이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어 미국 관세 부담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일본에 15%, 동남아 국가에 20~40%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미국 내 생산을 통해 이러한 비용 부담을 해결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아이소셀(ISOCELL)이라는 이미지센서 브랜드를 통해 스마트 기기와 차량 등 다양한 분야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주력 제품인 2억 화소 사양의 HP2는 갤럭시 S23 울트라 이후 여러 갤럭시 스마트폰에 탑재됐으며, 5000만 화소 사양의 JN3도 활용되고 있다.
다만 애플용 아이소셀 이미지센서는 기존 갤럭시 제품과는 다른 방향으로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은 아이폰 후면 카메라에 4800만 화소 사양을 사용하면서도 화소 수보다는 수광 능력 확보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5000만 화소 사진과 8K(7680 x 4320) 영상 기록이 가능한 사양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하이브리드 셔터 기술의 혁신적 적용
애플이 언급한 '혁신적인 신기술'의 정체는 삼성전자가 2025년 2월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서 공개한 3-적층형 하이브리드 셔터 이미지센서 기술일 가능성이 크다. 이 기술은 기존 이미지센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획기적인 접근법이다.
기존의 롤링 셔터 방식은 화소가 순차적으로 신호를 기록하는 구조로,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를 촬영할 때 젤로 현상(Jello Effect)이 발생해 이미지가 휘어지거나 출렁이는 문제가 있다. 반면 글로벌 셔터는 화소 전체가 동시에 신호를 기록해 왜곡 문제를 해결하지만, 제조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하이브리드 셔터 기술은 두 방식의 장점을 결합했다. 일반적인 촬영 환경에서는 롤링 셔터를 사용하다가 빠른 피사체를 인지하면 글로벌 셔터로 자동 전환하는 방식이다. 포토다이오드(수광 장치), 아날로그 회로(신호 처리), 디지털 처리(후처리) 레이어를 각 층에 배치한 적층형 구조로 크기도 대폭 줄였다.
글로벌 셔터 작동 시에는 화소 4개가 하나로 결합되어 삼성전자의 테트라픽셀 기술과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때 5000만 화소에서 1250만 화소로 줄어들지만, 수광량이 증가해 저조도 환경에서도 고화질 촬영이 가능하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생산 가능성
이미지센서 외에도 애플의 A 시리즈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생산도 협업 범위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애플의 모든 주요 처리장치는 TSMC에서 생산되지만,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삼성전자에 일부 생산을 맡길 수 있다.
실제로 초창기 아이폰에 탑재된 A4부터 A7 칩까지는 삼성전자가 생산을 담당했던 경험이 있다. 이후 공급망 다변화를 이유로 TSMC로 물량을 이전했지만, 최근 애플이 A 시리즈 칩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다시 삼성전자와의 협력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애플 전문 애널리스트인 궈밍치(Ming-Chi Kuo)는 "A18 프로 칩을 활용한 맥북을 개발 중이며 2026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아이폰과 보급형 맥 제품 모두에 A 시리즈 칩을 활용한다면, TSMC와 삼성전자 양쪽 생산 라인을 통해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전력 관리 칩의 새로운 협력 영역
애플이 언급한 "전력 소비와 성능의 최적화" 관점에서 볼 때, 전력 관리 칩(Power IC) 분야의 협력도 중요한 가능성으로 거론된다. 스마트 기기의 한정된 공간에서 배터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최적화된 전력 솔루션이 필수적이다.
특히 디스플레이, 시스템 칩, 메모리, 카메라 등 각 부품별로 세밀한 전력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전력 관리 기술과 애플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 최적화 역량이 결합된다면 혁신적인 전력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전략적 의미
이번 애플과의 협업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 부문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앞서 2025년 7월 28일에는 테슬라와 165억 달러(약 22조 9168억 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한 바 있어, 연이은 빅테크 기업과의 협업이 성사된 것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부문은 그동안 대형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시장조사기업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파운드리 시장점유율(매출액 기준)은 TSMC 67%, 삼성전자 11%로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체결된 이번 계약들은 단순한 매출 증대를 넘어선 전략적 가치를 갖는다. 특히 애플과 테슬라라는 두 빅테크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중국 견제 기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국 내 생산 기지를 갖춘 삼성전자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단순한 제조 위탁을 넘어 장기적인 기술 파트너십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