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도전심과 강철멘털
불모지였던 한국 스노보드에서 기적 같은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에 한국 스노보드 역사를 새로 쓰는 유승은(18·성복고), 최가온(18·세화여고), 이채운(20·경희대) ‘제트세대 어벤저스’가 주인공이다. 2000년대생 3인방의 공통점은 '대범함'이다. 철저한 계산과 과감한 도전으로 위험천만한 기술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이는 찰나의 순간에 공중에서 몸을 비틀고 회전하며 한계에 도전해야 하는 스노보드 프리스타일 종목 특성과도 맞아떨어진다.
위험천만한 기술, 성공으로 승화
지난 10일 한국 스키·스노보드 프리스타일 종목 역사상 첫번째 메달(동)을 딴 유승은을 지도하는 이창호 대표팀 코치는 "공중에서 네바퀴 도는 2차 시기 기술(프런트사이드 트리플 코크 1440도)은 훈련 때 에어매트에서만 해보고, 눈에서는 안 해본 것"이라며 “메달을 따려면 고난도 기술이 필요했는데, 착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 승은이와 논의해 강행했다”고 설명했다. 이 코치는 “평소엔 조용한 선수인데, 본인도 너무 흥분해서 당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강철멘털'과 패기찬 목표 설정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신동’ 최가온은 생애 첫 올림픽 예선을 마친 뒤 “아직 기술을 반도 못 보여드렸다. 결승 때 최대한 다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세계선수권 최연소 챔피언 이채운 역시 예선 뒤 “2022년 베이징 대회 때는 (한국 선수단) 최연소 참가자였다면, 2026년 대회에선 절대 강자가 되고 싶다. 다른 선수들에게 ‘저 친구는 위험하다. 무섭다’는 인식을 박아주고 싶다”며 “결선에선 프런트사이드 트리플 코크 1620도(네바퀴 반)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올림픽 출전 선수 중 저만 준비한 기술이고, 저밖에 못 하는 기술이다. 결승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패기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3인의 또 다른 공통점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부상을 잘 이겨냈다는 것이다. 유승은은 복사뼈·손목 골절 등 과거 큰 부상으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을 주변의 도움으로 이겨냈고, 최가온 역시 허리 부상으로 1년간 재활한 뒤 월드컵 등 큰 무대에서 당당히 실력을 입증하며 위기에 강한 ‘강철 멘털’을 보여줬다. 이채운은 지난해 3월 무릎 연골 수술을 받은 뒤 올림픽 무대에 올라 당당히 결선에 진출했다. 부상 복귀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다른 선수들보다 2배 넘는 훈련을 소화했다고 한다.
인프라 문제, 성장의 장애물
열정이 모여 불모지에 싹을 틔우기는 했으나, 이들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바로 선수들의 실력을 못 따라가는 한국 스노보드 인프라 문제다. 현재 국내에는 제대로 된 훈련장조차 없어 선수들은 매 시즌 수억원의 자비를 들여 국외를 전전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코치는 “인프라가 너무 부족한 지금의 환경에서 승은이가 잘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재능 있는 천재들이 끊임없이 나와도 이를 뒷받침할 구조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번 ‘어벤저스 3인방’의 활약은 ‘찻잔 속 돌풍’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출처: 한겨레, “스노보드 '어벤저스' 3인방 / 불모지에 꽃피운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