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SONOW
미·중 양강 구도 바깥에서 부상하는 'AI 중견국'들의 새로운 움직임
세계의 인공지능(AI) 지도가 조용히 재편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한 양강이 형성한 중력권 바깥에서,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각자의 속도와 궤적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AI 중견국(AI middle powers)'으로 불리며, 미·중 양강의 틈바구니에서 주권적 AI 역량을 키우면서 때로는 두 강대국에 도전하고 때로는 이슈별로 기민하게 한쪽에 정렬해 자국의 기술·산업 생태계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국가들이다.
이들의 경쟁은 단순히 '세계 3위 자리'를 두고 벌이는 순위 다툼이 아니다. 실제로는 양강 구도를 다극 체제로 바꾸는 동력을 둘러싼 훨씬 더 깊은 승부라 할 수 있다. AI 패권이 양강에서 다수 국가로 분산될 수 있는지, 그 질서를 누가 설계하고 주도할 것인지에 관한 경쟁이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세계 3위' 넘어 '질적 3강'을 지향하는 한국의 AI 전략
한국이 지향해야 할 바는 단순히 국제 순위 3위 자리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들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벤치마크 점수는 현실의 성과를 온전히 대변하지 못하며, '랭킹 경쟁'보다 '질적 경쟁'에서 앞서나갈 때 지속가능한 AI 강국의 미래가 열릴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제조업, 의료 서비스, 문화 콘텐츠, 방위산업, 디지털 정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AI로 우리가 잘하던 것을 더 잘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병원, 공장, 교실, 관공서, 창작 스튜디오 등 일상의 모든 공간에서 AI가 "조용하지만 결정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풍경을 일상화할 때,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총량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AI 기본사회 구축과 중견국 연대를 통한 국제 리더십 확보 방안
한국이 추구해야 할 AI 강국의 핵심은 'AI 기본사회'라는 사회적 상상력이다. 이는 소수 연구실이나 대기업만 발전하는 세상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AI의 수혜자이자 생산자가 되는 사회 시스템을 의미한다. 양질의 공공데이터와 투명한 규칙, 합리적인 위험관리 체계를 기반으로 국민 누구나 AI 도구를 활용하고 학습할 기회가 보장되는 환경이다.
국제 무대에서는 'AI 중견국 연대의 설계자'로 나서야 한다. 한국이 AI 안전성 평가 기준, 데이터 신뢰 프레임워크, 상호 인증 체계 등의 규범 외교 이니셔티브를 선도한다면 기술 경쟁력과 국제 협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다양한 AI 중견국들과 데이터셋 공동 구축, 시험베드 및 공공조달 연계 프로젝트 같은 연합체계를 구축한다면, 한국은 '따라가는 3위'가 아닌 '질서를 만드는 3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진정한 승자는 순위표상의 3위를 차지한 국가가 아니라, 자국의 언어와 산업, 문화의 맥락에서 AI를 가장 능숙하게 활용하는 국민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