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SONOW
참사 현장의 영웅, 홀로 견딘 고통의 무게
2022년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펼쳤던 30세 소방대원 박모씨가 실종된 지 10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20일 낮 12시 20분경 경기도 시흥시 금이동 수도권 제1외곽순환고속도로 교각 아래에서 발견된 박씨의 시신은 이미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상태였다.
박씨는 지난 10일 오전 2시 30분경 제2경인고속도로 남인천 톨게이트 근처 갓길에 차를 세운 뒤 홀연히 사라졌다. 발견 지점은 실종 장소에서 약 8km 떨어진 곳이었으며, 그의 휴대전화는 인천 남동구 서창동의 한 아파트 근처에서 별도로 발견됐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박씨가 실종 전날인 9일 오후 5시경 여자친구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넌 참 괜찮은 사람이고,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다. 건강 잘 챙기라"이 메시지는 마치 작별 인사처럼 들려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경찰은 "타살 흔적은 없었다"며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울증 외에 다른 원인이 있는지도 함께 조사할 예정이다.
참사 후유증, 3년간 이어진 고통의 기록
박씨의 죽음은 2022년 핼러윈 참사가 남긴 깊은 상처를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박씨는 참사 이후 지속적으로 우울증을 앓아왔으며, 올해 4월까지 총 8차례의 심리상담과 4차례의 우울증 검사 및 치료를 받았다.
박씨 유족은 "핼러윈 참사 직후 우울증 진단을 받고 힘들어했다"고 증언했다. 2017년 소방 구급대원이 된 박씨는 인천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며 동료들로부터 "성실하고 원만한 친구"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인물이었다.
당시 박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은 그가 겪었던 트라우마의 깊이를 보여준다. "사망하신 분들이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며 "희생자들의 부모님은 어떤 마음일까. '이게 진짜가 아니었으면' 생각했다"고 당시 심경을 토로했었다.
이는 재난 현장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소방대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생존자를 구하고 희생자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목격한 참혹한 현장이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괴롭혀왔던 것이다.
뒤늦은 정부 대응, 3300여 명 심리상담 계획
박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정부와 소방 당국이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소방청은 핼러윈 참사 등 재난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대원 3300여 명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깊은 애도를 표했다.
"상상조차 어려운 고통과 싸우며 이제껏 버텨온 젊은 청년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진다"며 "참사 후유증이 사회 전반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있게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들이 박씨의 죽음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참사 발생 후 거의 3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대규모 심리상담이 계획된 것은 재난 대응 인력의 정신건강 관리에 대한 정부의 인식 부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PTSD와 재난 대응 인력의 정신건강 문제
박씨의 사례는 재난 현장 대응 인력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소방대원, 경찰, 의료진 등 재난 현장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인력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특히 대형 참사 현장에서는 한 번에 다수의 사상자를 목격하게 되면서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된다. 이러한 충격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치료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재난 대응 인력의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기적인 심리검사, 의무적 상담 프로그램, 직무 순환제 등을 통해 대응 인력의 정신건강을 사전에 관리하고 있다.
시스템의 공백, 개인에게 전가된 책임
박씨가 받은 8차례의 심리상담과 4차례의 우울증 치료는 그가 나름대로 도움을 구하려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개별적 대응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점을 이번 사건이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재난 대응 인력의 정신건강 관리는 개인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체계적인 예방 시스템, 지속적인 모니터링, 그리고 필요시 즉각적인 개입이 가능한 종합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또한 재난 대응 업무의 특성상 동료나 상급자에게 자신의 정신적 어려움을 드러내기 어려운 조직 문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조직에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늦었지만 필요한 변화, 제도적 개선 과제
박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재난 대응 인력의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방청이 발표한 3300여 명 대상 심리상담은 시작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첫째, 정기적이고 의무적인 정신건강 검진 시스템 구축. 둘째, 재난 현장 투입 후 즉각적인 디브리핑과 심리적 응급처치 제공. 셋째, 장기적 추적관리를 통한 지속적 모니터링.
또한 조직 문화의 변화도 필요하다.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약함으로 치부하는 인식을 바꾸고, 전문적 도움을 구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재난 대응 인력들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방치하는 것은 결국 사회 전체의 안전망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박씨 같은 안타까운 희생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져야 할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