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SONOW
기재부 "지원 곤란" 결정에 권성동, 장관 직접 압박
부정부패가 우려되는 부실사업으로 판정돼 기획재정부가 차관 지원을 거부했던 7천억원 규모의 필리핀 토목 사업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압력으로 뒤늦게 재개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21 취재 결과, 필리핀 재무부가 2023년 11월 한국 정부에 요청한 '피비비엠(PBBM) 농촌 모듈형 교량 사업'에 대해 기재부가 2024년 2월 내부적으로 지원 거부를 결정하고 4월 필리핀 정부에 공식 통보했으나, 권 의원의 세 차례 압박으로 사업이 재개됐다.
권 의원은 기재부가 내부적으로 지원 거부 결정을 내린 2024년 2월 초 최상목 기재부 장관을 직접 접촉해 "지원을 다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권 의원은 "필리핀 농촌 모듈형 교량 사업에 EDCF를 지원하면, 그 대가로 필리핀 정부로부터 니켈 광산 채굴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압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부실공사·부정부패 의혹 기업 참여로 지원 거부
기재부가 이 사업의 지원을 거절한 결정적인 이유는 부실·부패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 사업에 현지 컨설턴트로 참여한 필리핀 현지 기업은 과거 비슷한 교량 건설 사업에서 부실공사를 했고 부정부패 의혹이 있었다. 해당 기업은 1996년 200개 교량을 설치하는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고가 납품 논란을 일으켰고, 도로와 연결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교량을 설치하는 등 부실공사 문제로 말썽이 됐다.
필리핀 정치권에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필리핀 연방당 소속 상원의원인 프랜시스 톨렌티노는 2024년 10월 "이전에 영국의 지원을 받아 모듈형 교량 사업을 추진했는데 어디에 설치해야 할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다"며 "재료 대부분이 창고에 그대로 보관돼 있다"고 지적하며 부실·부패 의혹을 제기했다.
"외교적 결례" 언급하며 수출입은행까지 압박
권 의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기재부가 4월 필리핀 정부에 지원 거부 공식 서한을 전달하자, 5월 권 의원은 다시 기재부에 사업 재추진을 거듭 요청했다. 수출입은행의 현장 면담 이후에도 사업에 진척이 없자 권 의원은 세 번째 압박에 나섰다. 5월 말 기재부 관계자들을 의원실로 불러 필리핀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사업 지원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권 의원은 수출입은행 관계자들이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필리핀 정부 관계자들에게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EDCF 지원을 거부하는 기재부와 수출입은행을 업무상 실책의 이유를 들어 협박한 셈이다. 수출입은행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기재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사업 규모 축소해 재개, 2022년 특사 방문이 배경
결국 기재부는 권 의원의 계속되는 압박을 못 이기고 2024년 10월 수출입은행의 '필리핀 농촌 모듈형 교량 건설사업 타당성조사 용역' 발주를 승인했다. 대신 규모를 기존의 350개 교량에서 70개 교량으로 줄이고, 7100억원 규모에서 1100억~1300억원 규모로 줄였다. 타당성조사 용역을 발주한 것은 사실상 필리핀 농촌 모듈형 교량 사업을 한다는 의미다.
권 의원이 필리핀과 연을 맺은 건 2022년 6~7월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재임하던 시절 대통령 윤석열의 특사 자격으로 필리핀을 전격 방문한 때로 보인다.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열린 필리핀과의 크고 작은 공식 모임에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한겨레21은 권 의원과 보좌관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