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무역대표부, 한국 방위산업 절충교역을 첫 무역장벽으로 지정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의 방위산업 절충교역(defense offset) 정책을 처음으로 외국 무역장벽 보고서에 포함시키며 한미 간 새로운 통상 갈등이 예상된다. USTR은 4월 1일 발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ational Trade Estimate Report)'에서 "한국 정부가 국방 절충교역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 방위 기술보다 국내 기술과 제품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계약 금액이 1,000만 달러를 초과할 경우 외국 계약자에게 절충교역 의무가 발생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방위산업 절충교역이란 국방 분야에서 무기나 장비를 판매하는 국가가 구매국에 기술이나 수출 거래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협약을 의미한다. 이 정책은 E-7 조기경보통제기, F-35A 및 F-15K 전투기 업그레이드 등 다수의 주요 조달 사업에 적용되고 있다. 특히 이번 USTR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를 부과하기 불과 이틀 전에 발표되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관세는 다른 국가들이 미국 수출품에 부과하는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기준으로 맞춤형으로 부과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한국 방위사업청 조용진 대변인은 "한국과 미국 정부는 국방 조달 분야의 장벽 완화를 위한 상호 국방 조달 협정에 기반한 논의를 통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미국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보고서에 구체적인 사례가 없어 절충교역 프로그램이 포함된 이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것이 향후 미국 무기체계 획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 방위산업 절충교역의 실상과 미국의 전략적 의도
한국의 방위산업 절충교역 요구 수준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규정에 따르면 경쟁 입찰의 경우 절충교역 가치는 계약 금액의 최소 50%, 비경쟁 조달의 경우 30%를 차지해야 한다. 이에 비해 일부 유럽 국가들은 70%나 심지어 100%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산업연구원(KIET)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절충교역 가치는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79.9억 달러에서 2016년부터 2020년 사이 8억 달러로 크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USTR이 이를 언급한 것은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것이 향후 방위산업 협상에서 미국이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협상 전략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번 보고서는 한국의 소고기 수입 제한 문제, 수입 자동차에 대한 배출 관련 규제, 제약품 가격 정책 등도 함께 언급하고 있어,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고서에서 방위산업 절충교역을 언급한 것은 국방 분야와 무역 정책을 연계하려는 시도로도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4월 17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서울과의 '원스톱 쇼핑' 협상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방위비 분담금, 무역, 관세 등을 모두 포괄하는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한국 정부의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국방 조달 분야의 장벽 완화를 위한 상호 국방 조달 협정에 기반한 논의를 통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한미 방위비·무역 연계 협상, 미래 동맹 관계에 영향 우려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 방위산업 절충교역에 대한 지적은 그동안 미국이 한국에 요구해 온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과도 맞닿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당시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한국이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50억 달러까지 증액을 요구했으나 협상이 난항을 겪었다. 당시 한국이 제시한 13% 인상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했고, 결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2021년 3월에야 13.9% 인상을 포함한 5년 협정이 타결됐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분담금과 무역 문제를 연계하려는 시도가 한미 동맹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공동 원칙과 목표에 기반한 동맹을 단순한 거래 관계로 격하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이 안보 협상과 무역 협상을 분리하려는 노력과도 충돌하는 양상이다. 한국의 국가안보 관계자들은 방위비 분담금이 이미 합의된 사안이므로 재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USTR 보고서가 실제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수차례 언급했듯이 미국 기업에 불공정하거나 차별적이라고 판단되는 관세 및 비관세 조치들이 상호관세의 범위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산업부는 이번 보고서가 "다른 미국 무역 파트너들에 비해 한국을 더 우호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지만, 방위산업 절충교역이 새로운 통상 갈등 요소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방위산업과 무역 정책이 연계된 복합적 협상에 대비한 전략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