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소심 무죄 선고의 핵심 법적 근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신속하게 심리되는 가운데,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법적 근거가 대법원의 최신 판례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고법 형사6-2부(재판장 최은정)는 지난달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지난해 10월 31일 선고된 대법원 '정읍시장 판례'를 판결문에 6차례나 직접 인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정읍시장 판례가 이 후보 사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주심(主審)인 박영재 대법관이 속한 대법원 2부에서 판단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법리적 판단 기준이 이미 대법원에서 확립되었음을 시사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고 김문기씨와의 골프 관련 발언에 무죄를 선고하며 이 판례를 적극 활용했다.
그동안 보수 언론에서는 이 후보 항소심 무죄 판결이 2020년 7월 권순일 전 대법관이 참여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전원합의체 판례의 영향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실제 항소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이 판례는 국토부 협박 무죄 판단에만 1차례 직접 인용됐을 뿐, 항소심 무죄 판단의 주요 근거는 불과 6개월 전에 나온 정읍시장 판례였던 것이다.
정읍시장 판례와 이재명 사건의 판단 유사성.
이학수 정읍시장은 2022년 지방선거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혐의(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권영준·오경미·박영재)는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여러 핵심 법리를 확립했다. 첫째, "여러 표현 행위가 일시와 장소를 달리하여 이루어진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개별 행위별로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 둘째, "공표된 사실의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에는 세부에 있어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허위의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 셋째, "의견과 사실이 혼재되어 있는 표현은 이를 전체적으로 보아 (공직선거법에 말하는) 사실을 공표했는지 판단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정읍시장 판례에 대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법의 기본원칙에 입각해 선거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대의민주주의를 택한 헌법정신을 따른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후보의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법리를 그대로 적용했다. 검찰이 이 후보의 2021년 4차례 방송 인터뷰에서 한 골프 관련 발언들을 하나로 묶어 포괄일죄로 기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정읍시장 판례와 같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나온 발언들을 개별적으로 판단했다. 또한 발언의 맥락과 질문의 성격을 고려해 허위사실공표죄 성립 여부를 세밀하게 검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신속한 심리 진행.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맡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차 심리 이틀 만인 24일 두 번째 심리를 진행했다. 이처럼 전례 없는 기일 공개와 빠른 심리 속도에 정치권과 법조계 모두 그 의도를 놓고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6·3 대선 전 선고를 목표로 한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는 대법관 14명 중 12명의 대법관이 참여하는데, 주목할 점은 정읍시장 판례를 남긴 권영준·오경미·박영재 대법관도 심리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특히 박영재 대법관은 이번 사건의 주심을 맡고 있어 그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대법원 근무 경험이 있는 법조계 인사들은 대체로 상고 기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한 고법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이 직접 유죄로 파기자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항소심이 가져다 쓴 법리와 사실관계 판단에 비춰볼 때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기도 어려운 사건"이라며 "상고 기각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항소심 판결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전망.
일부 언론에서는 항소심 재판부가 이재명 후보의 전체 발언을 3가지로 잘게 쪼개는 방식으로 무죄를 선고했다고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허위사실공표죄를 다루는 대법원의 일관된 판결 방식을 충실히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항소심 재판부는 "질문 자체에 골프 동반 의혹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는데, 외부의 제3자가 제기한 의혹을 기초로 피고인 발언의 목적을 추론하고 의미의 외연을 확장했다. 일반 선거인 관점에서 표현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는 법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검찰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는 정읍시장 판례에서 "사후적 해석을 가미해 형사처벌의 기초로 삼는 것은 선거 과정에서 장려돼야 할 표현을 위축·봉쇄하게 된다"고 판시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재명 후보의 대선 도전 가능성과 직결된 이번 사건의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정치권과 법조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법원이 그동안 확립해온 법리와 최근의 판례 흐름에 비춰볼 때, 항소심 무죄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6·3 대선 전 최종 판결을 내릴 경우, 이재명 후보의 대선 행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