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7년 IMO 탄소세 도입, 해운업계에 '경제적 폭탄'으로 작용할 전망.
국제해사기구(IMO)가 2027년부터 전 세계 선박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해운·조선업계의 긴급한 대응이 필요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유엔(UN) 산하 IMO는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를 열고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 조치를 최종 승인했다.
이번 조치는 실질적인 '해상 탄소세' 도입으로, 2027년 3월부터 5000t 이상 대형 선박을 대상으로 연간 온실가스 연료 집약도(GFI)가 일정 기준을 초과할 경우 톤당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IMO에서 제시한 GFI를 지키지 못한 선박은 온실가스 1t당 100~380달러(약 14만~54만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러한 탄소세의 도입은 해운업계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5000t 이상 선박은 국제 해운에서 발생하는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5%를 차지하고 있어, 규제 대상이 되는 선박이 상당히 많다. 해운업계는 기존 연료비에 더해 탄소세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영업 환경이 급속히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노후 선박을 주로 운영하는 중소 선사들의 경우 이러한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며,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파산 우려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운·조선업계는 바로 지금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 도입과 선박 현대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조선업계 '선박 세대교체'의 새로운 전환점.
해운업계의 위기가 조선업계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IMO의 탄소세 규제를 기점으로 환경 규제를 충족할 수 있는 신형 선박 발주가 급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선박 세대교체'의 기회로 인식하고,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주목받는 기술이 바로 소형모듈원자로(SMR) 추진 선박이다. SMR은 원자로 또는 일차계통을 포함한 전체 원자로 시스템을 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제작한 후 건설 현장으로 이송하여 설치하는 300㎿ 이하의 원전을 의미한다. 온실가스 배출 없는 원자로 추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탄소세 회피와 고효율 운항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미국 17개, 러시아 17개, 일본 7개, 중국 8기 등 총 71개 모델의 SMR이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40개는 개념만 존재하는 초기 단계이며, 5기는 기본설계 단계에 있어 상용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조선 강국인 한국이 이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한다면 글로벌 해운·조선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SMR 추진 선박은 탄소세 이후의 글로벌 해운·조선 질서를 다시 짜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며 "기술 주권 확보에 늦으면 조선 강국 지위도 위태로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이 세계 해운·조선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SMR 선박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SMR 추진 선박은 탄소세 이후의 글로벌 해운·조선 질서를 다시 짜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기술 주권 확보에 늦으면 조선 강국 지위도 위태로울 것이다.
SMR 기술의 핵심, 안전성과 효율성 균형이 관건.
SMR 선박 기술의 핵심은 바로 원자로의 종류와 안전성이다. SMR에서 전기 생산의 심장 격인 원자로는 원자핵이 작은 조각으로 쪼개져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열의 형태로 방출하는 핵분열 과정을 거친다. 이 열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과열로 인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가열되는 원자로를 식힐 냉각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냉각재의 종류에 따라 SMR은 가압경수로(물), 초고온가스로(헬륨), 소듐냉각로(나트륨), 납냉각로(납) 등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이중 경수로(3.5세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4세대 원전으로 분류된다. 각 원자로 종류별로 장단점이 뚜렷한데, 상용화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안전성이다.
예를 들어, 소듐냉각로는 경수로에 비해 열전달 효율이 10~50%나 높지만, 냉각재로 사용하는 나트륨이 물에 접촉하면 폭발 반응을 일으키는 단점이 있어 설계상의 과제로 남아있다. 실제로 세계 최초 원자력 잠수함을 건조한 미국은 소듐냉각로를 탑재한 SSN-575 시울프함에서 소듐 노출사고를 경험한 바 있다. 이후 시울프함을 절개해 소듐 원자로를 제거하고 경수로 원자로로 교체했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각 원자로 종류별로 장단점이 뚜렷한데 상용화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안정성"이라며 "효율성과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안전성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결국 상용화에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납냉각로, 선박용 SMR의 유력한 후보로 부상.
여러 SMR 기술 중에서도 납냉각로가 선박용 SMR의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황일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납냉각로의 경우 선박에 한번 용접해놓으면 수명이 40~50년이 간다"며 "게다가 만약 선박이 해일을 만나거나 바다에 침수되더라도 납이 굳기 때문에 폭발성이 없어 안전성이 담보된다"고 설명했다.
구소련은 과거 원자로 효율을 높이고자 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원자로를 연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폭발 사고를 겪었다. 이에 구소련 기술자들은 폭발성이 높은 소듐 대신에 납-비스무트 냉각제를 사용하는 소형 고출력 원자로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기술이 현대 납냉각로의 기반이 되었다.
납냉각로는 안전성과 효율성을 모두 갖춘 기술로 평가받고 있어, 선박용 SMR로 개발될 경우 환경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도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탄소세가 도입되는 2027년 이후의 해운·조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핵심 기술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박소영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각국이 앞다퉈 자국 산업 보호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성장형 탄소중립 전략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며 "특히 SMR, 친환경 선박 기술이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제 규약 및 기준 제정 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이 해운·조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지키고 탄소중립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SMR 선박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7년 탄소세 도입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친환경 선박 기술 확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