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 중심에서 성장 중심으로 ICT 정책 전환 필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이 규제 중심에서 성장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정보통신정책학회, 한국통신학회, 한국경영과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17일 서울 프레스센터 정책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AI 시대에 맞는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접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인공지능 시대, 국가 ICT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방향'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현행 ICT 정책의 한계점을 진단하고 미래 지향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규제 중심 정책이 급변하는 AI 시장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민간의 혁신을 촉진하는 정책 프레임워크로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ICT 정책은 지나치게 세부적이고 경직된 규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빠르게 변화하는 AI 기술과 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존의 틀에 갇힌 정책 접근법은 글로벌 AI 경쟁에서 국내 기업들의 혁신 역량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AI 중심 생태계로의 전환과 차세대 혁신 전략 제안.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정부 정책의 역할과 목표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규제를 다듬는 수준을 넘어 산업 생태계 자체를 새롭게 짜야 할 때"라며 "수요 지향 기술 개발, 성장 정책으로의 전환, 산업 생태계 재편 등 차세대 3대 혁신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신 교수의 제안은 기존의 공급자 중심, 규제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시장 수요에 맞춘 기술 개발과 성장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AI 시대에는 개별 기업이나 산업의 경쟁력보다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이 중요하므로, 산업 생태계 자체를 재편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모정훈 연세대 교수는 한국의 AI 전환 수준이 여전히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AI 전환(AX) 수준은 수우미양가 중에 미~양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AI 생태계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전략적으로 역할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GPU와 같은 대규모 컴퓨팅 자원 확보는 기업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규제를 다듬는 수준을 넘어 산업 생태계 자체를 새롭게 짜야 할 때다. 수요 지향 기술 개발, 성장 정책으로의 전환, 산업 생태계 재편 등 차세대 3대 혁신 전략이 필요하다. - 신민수 한양대 교수
콘텐츠·미디어 분야 정책 개편과 예산 확대 필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콘텐츠·미디어 분야의 정책도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곽규태 순천향대 교수는 "방송·미디어 분야는 공공성 측면과 상업성 측면의 정책적 목표가 혼재되면서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며, 공공성과 규제 대상의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곽 교수는 콘텐츠 산업에 대한 정부의 예산 배정이 지나치게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국가 전체 예산 중 콘텐츠 산업에 할당되는 비중은 0.13%에 불과하다"며 "산업적 효과를 고려할 때 정부 전략 사업으로 격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콘텐츠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 브랜드와 경제적 부가가치를 동시에 창출할 수 있는 분야임에도 정부의 전략 산업 우선순위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다양한 부처로 나뉘어진 콘텐츠·미디어 정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플랫폼과 OTT 중심으로 급변하는 환경에서 부처별로 분절된 정책은 일관성 있는 전략 추진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AI 인프라 투자와 민간 혁신을 위한 장기 전략 수립.
AI 시대를 이끄는 핵심 인프라에 대한 장기적 투자 전략 수립도 시급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안정민 한림대 교수는 "현재의 통신요금 인하 정책은 과거 패러다임에 갇힌 정책적 무지의 단면"이라며, 시장 구조 변화와 기술 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 중심 정책이 민간의 투자 여력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안 교수는 AI 데이터센터와 같은 차세대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조성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요금 정책을 포함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AI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통신요금 인하 정책이 이러한 투자에 필요한 재원 확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패널 토론에서는 AI 기술의 자립성과 초기 시장 안착을 위한 정부 주도의 전략적 지원 필요성도 논의됐다. 이홍주 가톨릭대 교수는 국산 AI 모델의 개발과 보급을 위해 의료, 법률, 공공 분야에서 부처 간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처별로 산재된 AI 관련 정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전략적 산업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박사는 "ICT는 이제 미래 산업을 넘어 국가 생존의 핵심 축"이라며, AI·미디어·플랫폼 산업을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정책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승훈 동국대 교수는 "AI는 차세대 네트워크의 핵심 요소"라며, 통신 투자 기준 역시 AI 인프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