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 미국 내 AI 하드웨어 생산에 700조원 투자 계획 발표.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가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14일(현지시간) 공식 블로그를 통해 향후 4년간 미국에서 최대 5000억 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AI 칩과 슈퍼컴퓨터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엔비디아 연간 매출의 약 2배에 달하는 규모로, 미국 내 AI 하드웨어 생산 기반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계획이다.
이번 계획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AI 인프라 생산을 위해 100만 평방피트(약 9만3000㎡) 이상의 제조 공간을 확보했다. 이는 축구장 약 13개 크기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로, 미국 내 AI 반도체 생산 시설의 대폭 확충을 의미한다. 엔비디아는 이 공간을 활용해 AI 칩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용 슈퍼컴퓨터 생산도 병행할 계획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내 제조 역량을 확대해 AI 칩과 슈퍼컴퓨터에 대한 증가하는 수요를 맞추고 공급망을 강화하며,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AI 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적 결정으로 보인다.
TSMC, 폭스콘 등과 협력...블랙웰 칩 현지 생산 이미 시작.
엔비디아는 이번 대규모 생산 계획을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및 패키징 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진행한다. 이미 엔비디아는 최신 AI 반도체 칩인 블랙웰(Blackwell)을 애리조나 피닉스에 있는 TSMC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대만에서 주로 생산되던 엔비디아의 핵심 AI 칩이 미국 현지 생산으로 전환되는 첫 단계를 의미한다.
또한 엔비디아는 앰코테크놀로지(Amkor Technology) 등과 함께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작업을 미국 내에서 진행하고 있다. 반도체 패키징은 생산된 칩을 제품으로 완성하는 중요한 공정으로, 이 과정마저 미국 내에서 진행함으로써 공급망 전체를 현지화하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생산부터 조립, 테스트까지 전체 공정을 미국 내에서 완결할 수 있게 된다.
"미국 내 제조 역량을 확대해 AI 칩과 슈퍼컴퓨터에 대한 증가하는 수요를 맞추고 공급망을 강화하며,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 -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텍사스주에서는 폭스콘(Foxconn), 위스트론(Wistron) 등 대만 제조업체들과 함께 슈퍼컴퓨터 제조 공장을 건설 중이다. 엔비디아는 향후 12~15개월 안에 이 공장에서 슈퍼컴퓨터의 대량 생산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이러한 행보가 "미국 내에서만 제조되는 AI 슈퍼컴퓨터의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트윈 기술 활용한 첨단 제조 인프라 구축.
엔비디아는 단순히 제조 시설을 확충하는 것을 넘어, 자사의 AI 및 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한 첨단 제조 시스템 구축도 계획하고 있다. 제조 시설 설계와 운영을 위해 엔비디아의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공장을 만들 예정이다. 디지털 트윈은 물리적 공장의 가상 복제본을 만들어 실시간으로 운영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또한 엔비디아는 제조 공정의 자동화를 위한 맞춤형 로봇도 자체 제작할 계획이다. 이는 엔비디아가 반도체 설계 기업을 넘어 제조 기술 혁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첨단 제조 기술의 도입은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첨단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는 특히 자사의 AI 기술을 제조 공정에 적용함으로써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AI 기반 품질 관리, 예측 유지보수, 공정 최적화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불량률을 낮추는 차세대 제조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는 자사 기술의 활용 범위를 확장하는 동시에 미국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는 의미를 갖는다.
미중 무역갈등 속 공급망 재편 움직임...미국의 반도체 자립 가속화.
엔비디아의 이번 발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정책이 강화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엔비디아가 대규모 투자를 통해 AI 인프라 생산을 미국으로, 특히 자국 내에서 완결되는 형태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미중 무역갈등 속에서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2022년 반도체과학법(CHIPS Act)을 통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번 엔비디아의 투자 계획은 이러한 정책 기조와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엔비디아가 자사의 최신 AI 칩인 블랙웰을 미국 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그동안 대만에 의존했던 첨단 반도체 생산 기반을 미국으로 일부 이전함으로써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는 효과도 있다.
이러한 엔비디아의 움직임은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미국 기업들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의 기업들도 미국 내 생산 확대를 검토하게 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지형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고성능 반도체의 생산 기반이 미국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향후 글로벌 기술 경쟁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