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보어 시대의 취향 혁명: 경계가 사라진 소비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SONOW / 202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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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보어 (Omnivore) : 성별, 나이, 소득, 직업 구분 없이 다양한 취향과 문화를 넘나들며 소비하는 '잡식성 소비자'

경계를 넘나드는 취향: 옴니보어 소비의 부상

현대 소비문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는 '옴니보어(Omnivore)' 트렌드의 확산이다. 원래 '잡식성'을 의미하는 이 용어는 이제 음식뿐 아니라 문화, 예술,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소비 성향을 지칭한다. 하이엔드 명품과 SPA 브랜드를 동시에 즐기고, 클래식과 힙합을 함께 감상하며, 미슐랭 레스토랑과 길거리 음식을 모두 사랑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행동 연구소 '트렌드모니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73%가 자신을 '특정 장르나 브랜드에 국한되지 않는 옴니보어 소비자'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과거 '유니보어(Univore)'로 불리던, 특정 장르나 취향에 집중하는 소비 패턴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옴니보어 소비가 단순한 '다양성'을 넘어 '의도적인 혼합'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옴니보어 소비자들은 각기 다른 장르와 취향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합하고 재해석하면서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다. 이는 단순히 많은 것을 소비하는 '다다익선'의 개념이 아닌, 선택적이고 주체적인 소비 활동이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정수연 교수는 "옴니보어 소비는 취향의 폭을 넓히는 것을 넘어, 개인이 다양한 문화적 코드를 자유롭게 탐색하고 재조합하는 창의적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옴니보어 현상의 배경: 문화자본과 디지털 환경의 변화

옴니보어 소비 트렌드의 확산에는 여러 사회문화적 배경이 존재한다. 첫째,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의 개념이 변화했다. 과거에는 클래식 음악이나 순수예술과 같은 '고급문화'에 대한 이해와 접근성이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였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유연성'이 더 중요한 자본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의 리처드 피터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상류층은 오히려 다양한 대중문화와 하위문화에 대한 이해와 참여도가 높은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을 피터슨 교수는 '상류층의 옴니보어화'라고 정의했다. 이제 '좋은 취향'의 기준은 특정 장르나 스타일에 대한 전문성이 아닌, 다양한 문화적 코드를 해독하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둘째, 디지털 환경의 발달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스트리밍 서비스, 소셜 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과거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콘텐츠와 문화를 쉽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니혼대학 미디어연구소의 다카하시 요시유키 교수는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로 문화적 게이트키핑이 약화되었고, 이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취향을 더 자유롭게 탐색하고 확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설명한다.

MZ세대: 옴니보어 소비의 선두주자

옴니보어 소비 트렌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은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다양한 문화적 코드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성장했고, 획일적인 취향이나 경직된 위계보다는 다양성과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형성했다.

LG경제연구원의 2024년 소비자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의 65%는 '특정 브랜드나 장르에 충성하기보다 다양한 옵션을 탐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이들의 72%는 '취향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아닌 개인의 선택과 정체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과거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소비 철학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MZ세대의 '의도적인 믹스매치'다. 그들은 하이엔드 패션 아이템과 빈티지 의류를 함께 착용하거나, 클래식 음악과 인디 음악을 동시에 즐기는 등 기존의 문화적 위계와 경계를 적극적으로 해체한다. 서울대 소비자트렌드분석센터의 최지혜 연구원은 "MZ세대에게 '좋은 취향'이란 특정 취향의 우월함이 아닌, 다양한 취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포용적 태도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현대 소비자들에게 '취향'은 단순한 선호의 문제를 넘어 자아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옴니보어 소비는 이러한 취향의 확장과 다양화를 통해 개인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산업의 대응: 경계를 허무는 브랜드들

옴니보어 소비 트렌드에 발맞춰 기업들도 기존의 정체성과 경계를 재정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명품 브랜드들은 스트리트 패션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고, 패스트푸드 체인은 프리미엄 메뉴를 도입하는 등 '하이-로우 믹스(High-Low Mix)' 전략이 확산되고 있다.

루이비통과 슈프림의 협업, 구찌와 노스페이스의 컬렉션, 스타벅스와 스탠리의 파트너십 등은 모두 서로 다른 문화적 코드와 소비자 층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크로스오버 마케팅은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브랜드 정체성 자체를 다층적으로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의 조사에 따르면, 이종 산업 간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브랜드의 82%가 새로운 소비자층 유입에 성공했으며, 71%는 기존 고객의 브랜드 충성도 강화 효과를 경험했다. 이는 옴니보어 소비자들이 단순히 '다양한'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간의 '예상치 못한 조합'에서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발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옴니보어 소비의 진화: 커뮤니티와 큐레이션의 역할

옴니보어 소비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은 무한히 확장되는 선택지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조합을 찾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가이드와 커뮤니티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취향과 장르를 아우르는 큐레이션 서비스와 취향 공유 플랫폼이 부상하고 있다.

옴니보어 소비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취향 연결자(Taste Connector)'의 역할을 하는 인플루언서와 플랫폼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장르와 문화적 코드 사이의 연결점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경험을 창출한다.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 스포티파이의 큐레이티드 플레이리스트, 다양한 취향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등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취향 기반 커뮤니티'의 확산이다. 이는 특정 브랜드나 제품이 아닌, 다양한 취향을 자유롭게 탐색하고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커뮤니티다. 온라인 플랫폼 '테이스트디자이너'의 공동 창업자 김지현씨는 "현대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을 단순히 표현하는 것을 넘어, 다른 이들과의 취향 교류를 통해 새로운 발견과 성장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옴니보어 시대의 소비자 정체성: 다중성과 유동성

옴니보어 소비 트렌드는 소비자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한다. 고정된 단일 정체성보다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유연하게 오가는 '다중적, 유동적 자아'의 개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소비자들은 더 이상 하나의 취향이나 스타일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취향의 레퍼토리를 구축하고, 이를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능력이 새로운 사회적 자본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강대 경영학과 이준영 교수는 "과거의 소비자들이 특정 브랜드나 스타일에 대한 충성도를 통해 정체성을 표현했다면, 현대의 옴니보어 소비자들은 다양한 문화적 코드 사이의 자유로운 이동과 조합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변화는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일 브랜드에 대한 절대적 충성보다는, 다양한 브랜드와의 유연한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소비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미국 소비자 연구 기관 '듀크 소비자 인사이트'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68%는 '특정 브랜드에 충성하기보다 자신의 취향과 가치에 맞는 다양한 선택을 추구한다'고 응답했다.

옴니보어 소비자들에게 있어 취향은 더 이상 타고난 것이나 사회적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탐색과 발견을 통해 형성되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 취향의 우월함이 아닌, 다양한 취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열린 태도와 이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조합을 창출하는 창의성이다.

SONOW / 202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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