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불 사망사고 급증, 안전장비 부실과 대응체계 미흡 문제 드러나

SONOW / 202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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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동시다발 산불 확산, 진화 속도 더디고 인명피해 급증.

경상도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이 엿새째 계속되는 가운데, 진화 과정에서 공무원과 진화대원이 사망하고 헬기까지 추락해 조종사가 목숨을 잃는 등 인명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산불 대응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와 지자체의 안일한 대응이 이러한 인명피해의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산불 대응 중앙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인근 4개 시군으로 번져 피해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26일 오후 기준으로 산청·하동 산불의 진화율은 75%, 안동지역 산불의 진화율은 52%에 그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여의도 면적의 약 60.5배에 달하는 1만7천534헥타르(㏊)가 산불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오후 4시 기준으로 사상자 수는 사망자 24명, 중사자 12명, 경상자 14명 등 총 50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의성에서는 사망 20명, 중상 7명, 경상 8명 등 35명이 사상당해 가장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22일에는 창녕군청 소속 30대 공무원 1명과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3명이 산불현장에 투입됐다가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산불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는 불기둥으로 상승한 불똥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비화(飛火)' 현상이 지목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과 화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불똥이 상승기류를 탈 경우 최대 2킬로미터까지 날아갈 수 있어 진화 작업이 어려워지고 있다. 강풍과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산불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진화 인력의 피로도도 누적되어 추가 인명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후 헬기 추락과 안전장비 미흡, 진화대원 사망의 구조적 원인.

산불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망사고는 안전장비와 대응체계 미비 등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6일 오후 12시51분경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 한 야산에서 산불 진화 작업을 벌이던 헬기 1대가 추락해 기장 A(73)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추락한 헬기는 강원도 인제군 소속의 담수용량 1천200리터의 임차 헬기로, 1995년 7월 생산돼 30년 가까이 운행한 노후 장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을 통해 "산불재난특수진화대는 체계적인 교육훈련 없이 재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 산림청지회에 따르면 진화대원들은 대기시간에 청사 주변 조경 관리나 청소 등 업무에 투입되고, 심지어 민간인 묘지 벌초에도 동원되는 등 본연의 임무와 무관한 일에 투입되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진화복, 방염장비 등 충분한 안전장비가 지급되지 않아 일부 대원들은 운동화를 신고 출동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소방관들은 처우 개선이 많이 됐는데 비해 산불 진화대원들은 고령이 대부분이고 기간제 근로형태다 보니 안전장구 지급이 미흡한 것 같다"며 "낙후한 과거 소방청 정도의 대응 매뉴얼이 전부인 셈인데, 현 상황에서는 전문가들이 현장에 참여할 수 있는 대책이라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세진 우송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유례를 찾기 힘든 산불이라 어떠한 조치도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용량 헬기로 빨리 진압하는 게 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후 헬기의 사용과 안전 점검 미비 등 장비 측면의 문제점도 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는 체계적인 교육훈련 없이 재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진화복, 방염장비 등 충분한 안전장비가 지급되지 않아 운동화를 신고 출동하는 경우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가능성과 산림청 안전지침 미준수 논란.

이번 산불 진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진화 인력은 모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노동자 1명 이상이 사망할 경우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한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숨진 산불진화대원들은 창녕군 소속 기간제 노동자이기 때문에 창녕군수가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공무원도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하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상 종사자에 해당한다. 고용노동부는 산불 진화 업무를 수행하다가 사망사고가 났기 때문에 산재로 보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추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산불 진화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의 안전관리와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산림청이 지난해 발표한 '전국 산불방지 종합대책'의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 종합대책에는 산불현장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정기교육 실시, 산불 전문 진화인력 중심의 동원체계 마련, 위험 수준에 따른 인력 배치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산림청은 '규정된 안전장비를 착용한 진화대원만 산불현장에 투입하고 장시간 산불 진화시 교대와 휴식을 보장한다'고 명시했으나, 이번 사고를 통해 이러한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산림청은 2023년 8월 난연성과 열수측 등 개선사항을 반영한 '복제 지침'을 개정하기도 했으나, 실제 현장에서 이러한 지침이 제대로 이행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역대 최악의 동시다발적 산불 앞에서 기존의 안전 지침과 대응 매뉴얼이 효용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보다 강화된 안전조치와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SONOW / 202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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