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4구에 집중된 도로 아래 빈 공간, 도시 안전 위협.
서울시가 실시한 도로 안전 정밀 조사에서 도로 아래 빈 공간, 일명 '공동'이 총 329개나 발견되었으며, 이 중 약 40%가 강남 4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에 집중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강남구에서만 65개의 공동이 발견되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서초구 25개, 송파구 20개, 최근 땅꺼짐 사고로 1명이 사망한 강동구에서도 12개의 공동이 확인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곳은 서울 강남 중심부를 관통하는 신사역과 양재역 사이 19.8킬로미터 구간으로, 이 왕복 10차선 도로 아래에서만 13개의 공동이 발견됐다. 이중 논현역 주변에서는 즉시 복구가 필요한 긴급 등급의 빈 공간이 확인되어 도시 안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강남 지역 시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강남역 인근에서 만난 서명기 씨는 "여기 워낙 사람이 많으니까 만약에 그런 사고가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죠"라고 우려를 표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강남권에서 땅꺼짐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강남권에 지반 침하 위험이 집중된 이유는 지역적 특성과 도시 개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강남 일대는 과거 한강이 범람하던 지역을 매립한 땅으로, 지반 구성에 모래와 자갈이 많아 원천적으로 지반이 약한 상황에서 대규모 지하 개발이 진행되어 위험성이 더욱 높아졌다.
지반 약화와 대규모 지하 개발, 땅꺼짐 위험 가중.
전문가들은 강남권의 지질학적 특성이 땅꺼짐 현상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박창근 교수는 "싱크홀이 발생하려면 자연적인 요건, 충적층(하천 활동으로 굳지 않은 퇴적층)이 잘 발달되어 있는 거 하고 지하수가 잘 발달되어 있으면 일단은 싱크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강남 지역은 이러한 자연적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 땅꺼짐 위험에 더욱 취약한 상황이다.
이미 이러한 위협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에서 발생한 234건의 지반 침하 사고 중에서 강남구가 28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송파구가 24건으로 뒤를 이었다. 강동구는 12건, 서초구는 6건의 지반 침하가 발생해 강남 4구가 서울시 전체 지반 침하 사고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서울시는 도로 아래 공동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상·하수도 노후화, 대규모 굴착공사 관리 미흡, 공사로 인한 지하수위 저감, 그리고 지하매설물 파손에 따른 토사 유출 등을 지목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강남권의 지반 안전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는 강남 지역의 저지대와 상습 침수 구역일수록 도로 아래 빈 공간이 자주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집중 호우 시 침수 위험과 지반 침하 위험이 중첩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약해진 도로가 무너질 위험이 가중될 수 있어 더욱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싱크홀이 발생하려면 자연적인 요건, 충적층(하천 활동으로 굳지 않은 퇴적층)이 잘 발달되어 있는 거 하고 지하수가 잘 발달되어 있으면 일단은 싱크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에요. -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
지자체별 대응과 복구 현황, 안전 관리의 격차 드러나.
지반 침하 위험에 대한 지자체별 대응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강남구는 지난해 서울시에 언주로 6.7킬로미터 구간과 선릉로 6.3킬로미터 구간을 '지반침하사고 발생 빈도가 높다'며 고위험지역으로 선정해 보고했다. 이는 지반 침하 위험에 대한 인식과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치로 평가된다.
반면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는 고위험지역을 단 한 곳도 보고하지 않아 같은 강남권 내에서도 지반 침하 위험에 대한 인식과 대응에 격차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최근 지반 침하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강동구의 경우 12개의 공동이 확인되었음에도 고위험지역을 보고하지 않은 점은 지자체의 안전 관리 체계에 개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한편 서울시는 "발견된 공동 329곳 중 247곳은 발견 즉시 채움재를 주입해 복구했고, 나머지 82곳도 12월까지 굴착 복구를 마쳤다"고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긴급 복구 작업이 완료되었으나, 장기적인 지반 안정성 확보와 땅꺼짐 예방을 위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도시 전문가들은 지하 공간 개발과 지반 안전 관리를 병행할 수 있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강남권과 같이 지반이 약한 지역에서는 개발 계획 단계부터 지반 안정성을 고려한 설계와 시공, 그리고 지속적인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