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소, 경기 침체 속 역대급 매출 기록과 불황형 소비의 부상.
경기 침체와 고물가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이 '가성비'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대가성비 시대'가 도래한 가운데, 저가 생활용품 유통 기업 다이소의 실적이 주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아성다이소의 2024년 매출은 3조 9689억원으로 전년(3조 4604억원) 대비 14.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711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41.8%나 상승했다.
다이소의 매출 성장세는 지난 수년간 꾸준히 이어져 왔다. 2022년 2조 9457억원, 2023년 3조 4604억원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였으며, 영업이익 역시 2022년 2393억원, 2023년 2617억원으로 지속적인 상승을 기록했다. 특히 1000~5000원대 초저가 상품만을 취급하는 다이소의 박리다매 비즈니스 모델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매출 증가는 불황 속에서도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온라인 채널에서도, 다이소의 성장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애플리케이션·리테일 분석 서비스인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2025년 3월 다이소몰 온라인 애플리케이션 사용자 수는 405만 명으로, 전년 동월(214만 명) 대비 89%나 증가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로, 온라인 쇼핑 환경에서도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이소의 성장은 타 유통업체들이 전반적으로 실적 부진을 겪는 가운데 더욱 두드러진다.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이 소비 위축으로 고전하는 상황에서, 다이소만이 꾸준한 매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경기 불확실성과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소비자들이 가격 대비 효용이 높은 상품에 수요를 집중시키고 있음을 반영한다.
명품 시장의 쇠퇴, 글로벌 브랜드와 국내 플랫폼의 위기.
불황형 소비 트렌드의 확산과 대조적으로, 명품 시장은 빠르게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의 2025년 1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를 크게 밑돌았다. 애널리스트들은 평균 0.55% 하락을 예상했으나, 실제 패션·가죽 부문 매출은 5% 감소하며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부진을 기록했다.
루이뷔통모에헤네시는 루이뷔통, 크리스티앙 디올, 불가리, 로로피아나 등의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그룹으로, 이들의 실적 부진은 전 세계적인 명품 시장의 침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명품 불황이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발 관세 전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경기 불안과 환율 상승, 무역 불확실성이 얽히면서 명품 시장의 큰 손인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명품 시장의 침체는 국내에서도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구찌가 현재 운영 중인 국내 매장 46곳 중 약 10곳의 철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구찌는 이미 지난달 말 신라면세점 서울점과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매장을 폐점했다. 이는 국내 명품 소비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온라인 명품 시장에서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국내 대표적인 명품 플랫폼 '발란'이 기업 회생을 신청했으며, 또 다른 명품 플랫폼 '머스트잇'의 경우 적자를 면하기 위해 외부 자금 수혈에 나서고 있다. 이는 명품 소비 위축이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채널에서도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기 불황에 관세 전쟁까지 겹치며 국내외 전반적으로 물가가 오르면, 소비는 자연스레 저가 시장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가성비 중심의 저가 시장과 중고 시장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불황이 재편하는 소비 지형, 가성비와 중고 시장의 부상.
경기 침체와 고물가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소비 지형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다이소의 약진과 명품 시장의 침체는 이러한 변화의 양극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소비자들은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실용적인 선택을 추구하며,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상품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소비 패턴의 변화는 유통 시장 전반의 지각변동을 초래하고 있다. 고가 상품과 브랜드 중심의 소비보다는 저가이면서도 품질이 보장된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다이소와 같은 저가 생활용품 유통업체가 성장하는 반면, 명품 브랜드와 백화점 등 고가 상품 유통 채널은 위축되고 있다.
또한 중고 시장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새 제품을 구매하는 대신, 품질이 좋은 중고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려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중고 거래 플랫폼과 빈티지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는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와 맞물려, 새로운 소비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소비 트렌드가 단기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그리고 무역 갈등 등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가성비를 중시하는 합리적 소비 문화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유통 기업들도 가격과 품질의 균형을 맞춘 상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