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형배 헌법재판관, 33년 법조 경력의 마지막 강연.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역사적인 탄핵 결정문을 낭독했던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퇴임을 하루 앞둔 17일, 인하대학교에서 특별 강연을 통해 자신의 헌법적 소신을 밝혔다. 33년간의 판사 경력과 그중 6년간의 헌법재판소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진행된 이번 강연은 법조계와 학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문 소장대행은 이날 강연에서 특히 '관용과 자제의 기준'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헌법재판소의 판단 근거를 설명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사안을 판단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핵심 가치로, 국가기관 간의 권력 충돌과 관련된 사안에서 헌법적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강조했다. 문 소장대행의 이러한 발언은 지난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결정의 이론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인하대학교 로스쿨에서 진행된 이날 강연에는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과 교수진, 그리고 여러 법조인들이 참석했다. 문 소장대행은 강연 중 자신의 법조 경력과 헌법재판소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조화, 그리고 헌법 수호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단순한 법리 해석을 넘어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점을 역설했다.
"관용과 자제의 기준" - 헌법판단의 중요 개념 공개.
문형배 소장대행이 이날 강연에서 가장 주목받은 발언은 "야당의 잦은 탄핵소추는 기준을 넘지 않았고,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넘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었다"는 언급이었다. 이 발언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판결에서 적용한 '관용과 자제의 기준'이라는 헌법적 판단 원칙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관용과 자제의 기준'이란 민주주의 체제에서 각 국가기관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때 상호 존중과 자제를 통해 권력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문 소장대행에 따르면, 국회의 탄핵소추권 행사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모두 헌법이 부여한 권한이지만, 그 행사에 있어서는 일정한 자제와 관용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야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탄핵소추를 빈번하게 시도했더라도 이는 헌법상 허용된 권한 행사의 범위 내에 있었지만,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그 기준을 넘어섰다는 판단이 탄핵 결정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설명은 헌법재판소가 단순히 법리적 판단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와 권력 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탄핵 사안을 검토했음을 보여준다. 문 소장대행은 "헌법은 문언적 해석을 넘어 그 기본 정신과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더욱 신중해야 하며, 이는 '관용과 자제'라는 헌법적 가치의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날 공개된 '관용과 자제의 기준'은 향후 한국 헌법학계와 법조계에서 중요한 논의 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의 잦은 탄핵소추는 기준을 넘지 않았고,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넘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었다."
헌법 수호자로서의 마지막 여정과 미래 헌정질서에 대한 전망.
문형배 소장대행은 강연 말미에 자신의 33년 법조 경력과 6년간의 헌법재판관 생활을 돌아보며 소회를 밝혔다. 1990년 판사로 임관한 이후 줄곧 법원에서 근무하다 2019년에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 문 소장대행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수호라는 사명감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다"고 회고했다. 특히 헌법재판소에서의 마지막 중요 결정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이었던 점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헌법 수호자로서의 소명을 다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 소장대행은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 헌정질서 발전에 대한 전망도 제시했다. 그는 "우리 헌정사는 굴곡이 많았지만, 위기 때마다 헌법적 가치를 중심으로 극복해왔다"며, "이번 헌법적 위기 역시 헌법의 틀 안에서 해결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젊은 법조인들과 법학도들에게 "헌법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시대와 함께 발전하지만, 그 핵심 가치는 불변한다"며,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있어 용기와 원칙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문형배 소장대행은 강연 후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서도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면서도, 헌법적 가치와 원칙에 대한 견해를 솔직하게 밝혔다. 그의 이날 강연은 단순한 송별 인사를 넘어, 한국 헌정사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한 법조인으로서의 깊은 통찰과 헌법적 소신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문형배 소장대행은 내일(18일) 공식 퇴임하며, 향후 헌법재판소의 새로운 구성과 운영에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