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로고와 AAA 신용등급, 부채 그래프가 함께 표시된 부동산 금융 인포그래픽

출처 : society-now.com

97조 부채에도 AAA? 정부 보증이 만든 신용등급의 역설

24일 한국신용평가가 발표한 소식이 금융가를 놀라게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97조4000억원의 총차입금과 부채비율 217.7%라는 민간 기준으로는 '위험' 수준의 재무지표에도 불구하고 AAA 신용등급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 LH 재무현황 한눈에 보기 (2024년 말 기준)

• 총차입금: 97조4000억원
순차입금 93조원으로 국가예산 수준

• 부채비율: 217.7%
민간 기준 경고 신호에 가까운 수준

• 차입금의존도: 41.7%
자산 대비 차입금 비중이 높은 상태

• 신용등급: AAA (안정적)
정부 지원 가능성을 전제로 최고등급 유지

이는 일반 기업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민간 기업이 이 정도 부채비율을 기록한다면 신용등급이 급락하고 자금조달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LH는 다르다. 한국신용평가는 '제25-07회 특수채'에 대해 AAA(안정적) 등급을 부여하며, 기업어음과 단기사채에도 각각 A1 등급을 유지했다.

신평사가 제시한 평가 근거는 명확하다. LH의 법적 지위와 정책 수행 기관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정부의 지속적인 출자 및 보증 가능성이 핵심이다. 즉, LH가 아무리 많은 부채를 져도 결국 정부가 뒤에서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이 AAA 등급의 바탕인 것이다.

3기 신도시가 만든 구조적 부채 증가, 손실보전 시스템의 한계

LH의 재무구조를 이해하려면 정책사업 중심의 운영 방식과 손실보전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LH는 '한국토지주택공사법'에 따라 설립된 공기업으로, 공공주택 건설, 산업단지 개발, 임대주택 공급, 도시재생사업 등을 담당한다. 2024년 말 기준 정부와 국책은행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 손실보전 방식의 수익구조

LH의 수익구조는 '손실보전 방식'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공공주택과 산업단지 등 수익성이 낮은 공익사업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신도시나 택지개발 등 수익성이 높은 일반사업의 이익으로 메우는 구조다.

과거에는 이 시스템이 잘 작동했다. 신도시 개발과 택지 분양으로 충분한 수익을 내어 공익사업의 적자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와 공사비 상승으로 일반사업의 수익성마저 크게 줄어들면서 손실보전 여력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LH의 손실보전 시스템은 신도시 개발이 대박을 치던 시절에 만들어진 구조"라며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고 개발 비용이 급증하는 상황에서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급격히 악화되는 수익성 지표들

실제 수치를 보면 LH의 어려움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2023년 손실보전 대상 사업은 1조451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24년에도 7559억원 규모의 손실이 예상된다. 문제는 이 손실을 메워야 할 일반사업의 수익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 LH 수익성 악화 현황

• 손실보전 대상사업 적자
2023년 1조4511억원 → 2024년 7559억원(예상)

• 신도시·택지개발 영업이익
2020년 2조9937억원 → 2024년 1조903억원(예상)

• 연결기준 매출
2020년 24조4000억원 → 2023년 13조8840억원

• 영업이익
2020년 4조3346억원 → 2023년 437억원

신도시·택지개발 부문의 영업이익은 2020년 2조9937억원에 달했지만, 2024년에는 1조903억원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전체 실적 흐름도 마찬가지다. 연결 기준 매출은 2020년 24조4000억원에서 2023년 13조8840억원으로,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4조3346억원에서 437억원으로 급감했다.

🏗️ 3기 신도시 개발이 가져온 부채 폭증

LH의 부채가 이렇게 급증한 배경에는 3기 신도시 개발과 임대주택 확대 정책이 있다. LH는 2019년까지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를 줄였지만, 이후 대규모 정책사업이 시작되면서 다시 재무부담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특히 3기 신도시는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 토지 매입부터 인프라 구축, 주택 건설까지 모든 과정에서 엄청난 자금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런 투자의 회수는 수년 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부채만 늘어나는 구조다.

2028년까지 부채 226조원 전망, 정부 지원 의지가 핵심 변수

더 우려스러운 것은 앞으로의 전망이다. LH는 2028년까지 자산을 324조5000억원까지 확대할 계획이지만, 부채도 같은 기간 226조9000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부채비율도 230% 내외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 중장기 재무계획의 딜레마

이는 LH가 현재와 같은 외부차입 중심 구조를 지속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자산 확대는 정책사업 수행을 위해 필요하지만, 그에 따른 부채 증가는 불가피하다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정부의 재정지원 의지가 LH 신용등급 유지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LH의 신용도는 더 이상 자체적인 재무건전성이 아니라 정부의 지원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 주택법 개정도 변수로 등장

여기에 추가 변수도 있다. 공공주택을 민간 건설사가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주택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이 법 개정이 현실화되면 LH의 사업범위가 축소되고, 수익 기반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LH는 과거 2015년에도 기능 조정을 겪었다. 당시 택지개발 사업을 줄이고 임대주택과 도시재생사업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구조조정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LH는 정부정책 실행기관으로서 법적·제도적 기반이 탄탄하고, 정부의 출자 및 보증 여지도 여전히 높다"면서도 "3기 신도시, 임대주택 확대 등 정책사업 지출이 계속되면서 자산 회수 여력이 약화되고 있고, 수익성 저하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차입관리와 수익구조 안정화가 신용도 유지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AAA 등급 유지를 위한 과제들

결국 LH가 AAA 등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손실보전 시스템의 구조적 개선이다. 공익사업의 적자를 일반사업 수익으로 메우는 현재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둘째, 수익구조의 다각화가 필요하다. 신도시 개발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 의지 확보다. AAA 등급의 근간이 되는 정부 보증에 대한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LH의 AAA 등급은 분명 '정부 보증'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97조원의 부채에도 최고등급을 유지하는 이 역설적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LH와 정부의 구조개선 의지에 달려있다.